공드리표 시선으로 3D하게 세상 혹은 사랑 바라보기...
“이걸 쓰면 세상을 3D로 볼 수 있어요.”
“원래 세상은 3D 아닌가요?”
(대사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략...) 맞다. 세상은 원래 3차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이 세상을 3차원적으로 살아가고 있나? 혹시 우리는 너무나 평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위에서 종이 인형처럼 뻣뻣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물들만 3D로 보이면 뭐하나, 사는 행태가 2D인데...) 그래서 영화 속 스테판이 발명한 3D 안경을 두고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이 유치한 말장난 개그가 그저 개그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영화는 매우 초현실적이다. 스테판 TV의 조악한 종이 스튜디오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꿈과 현실을 종횡무진 이동한다. 커튼을 젖히듯 스튜디오에서 종이 창을 열면 스테판의 눈으로 본 현실이 나타나고 그마저도 꿈과 뒤섞이기 일쑤다. 회사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다가 거대한 손으로 윗사람과 싸우는가하면, 무너진 도시를 금방 새로 일으켜 세우고, 셀로판으로 만들어진 설산에서 스키를 탄다.
사실 주인공 스테판은 여섯 살 이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꿈에서 현실로 혹은 현실에서 꿈으로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라고 하면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이고, 여차하면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정신 착란 속에서 살아가는) 스테판은 이혼한 부모 주에 아버지를 택하여 멕시코에 살다가 (주인공 스테판을 맡고 있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얼마전까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젊은 체 게바라 형님이셨다. 저기 먼 남미에서 날아온 것 하며, 이상(그러니까 꿈)과 현실을 뭉뚱그리는 삶의 태도하며 영화 외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캐스팅이려나...) 아버지가 죽고나자 프랑스에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오게 된다.
어머니의 감언이설에 속아 엉뚱하게도 달력 만드는 회사에서 식자 작업을 하는 일을 하게 된 스테판은 자신의 창조적인 가치관과 맞지 않는 회사 업무에 지쳐간다. 하기야 세상의 멸망 징조와 같은 거대하고 끔찍한 사건과 사고들로 만들어진 (파멸학) 달력을 꿈꾸는 스테판과 벌거벗은 여성 누드 사진으로 꾸며진 (우리로 치자면 과거의 OB 맥주 달력쯤일까...) 달력을 만드는 회사의 궁합이 좋을리 없다.
그리고 이 시점에 조금은 현실적인 스테판의 사랑이 시작된다. 스테파니라는 이름의 여자가 옆집에 이사오면서 시작되는 너무나 순수한 스테판, 그리고 (외모 때문일까...) 자격지심으로 지쳐 있는 스테파니의 사랑은 우리들이 흔히 겪는 사랑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조심스러운 접근, 들통날 것이 뻔한 거짓말, 스토커에 가까운 집착, 어쩔 수 없는 엇갈림, 마음 속에 자리잡은 질투, 드러내지 않는 마음과 그래서 이를 확인하지 못하는 또다른 마음 등등...
하지만 영화는 아무래도 산만해 보인다. 물론 뮤직 비디오의 달인이었던 미셸 공드리가 보여주는 각종 키치 아트들은 재미있지만, 카우프만이 빠진 자리를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눈동자로도 채울 수 없고, 스테판의 파격적인 발명품들(파멸학 달력, 마음을 읽는 기계, 1초 타임머신, 달리는 말 인형 등)로도 달래지지 않는 카우프만에 대한 그리움... 하지만 공드리씨 힘내시길, 카우프만에 비해 미셸 공드리라는 이름은 얼마나 멋진가, 게다가 잠시나마 영화를 보는 동안 좀더 3D하게 살아보자는 마음도 먹을 수 있었으니...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 미셸 공드리 감독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샬롯 갱스부르 출연 / 105분 / 2006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