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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뒤뷔페 외 《아웃사이더 아트》

광기를 넘어서지 않고 광기로 흡수된 이들의 예술...

by 우주에부는바람

어떤 소설을 읽다가 헨리 다거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헨리 다거는 사십여년동안 시카고에 있는 공동주택의 방을 하나 빌려 살면서 시내의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보냈다. 어린시절 그는 지적 장애라는 오진을 받아 보호 시설에서 지내야 했다. 그리고 시설을 빠져나온 다음 자신의 방에서 혼자 살면서 사십여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유품을 정리하던 집 주인은 엄청난 것을 발견했다. 그는 ‘비현실 왕국의 비비안 걸스의 이야기 혹은 어린이 노예의 반란으로 인한 글랜디코 vs 안젤리안 전쟁 폭풍 이야기’라는 길다란 제목을 가진 소설을 타자기로 썼다. 이렇게 손수 타자기로 쳐서 제본한 책이 7권이었고 손으로 쓴 원고가 8권이었다. 모두 15,145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삽화도 수백 장을 그렸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그가 실존하는 인물이고 소설 속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것을 알고 꽤 놀랐다. (내가 죽었을 때 나의 방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헨리 다거라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자신만의 창조적인 세계를 (꿈 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루고 있음을 알았다. 이를 좀더 잘 확인하기 위해 이들의 세계, 우리가 흔히 예술의 세계라고 하는 곳(주류와 비주류를 모두 포함하여)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샀다.


“... 정돈된 문화적 화단 밖, 의외의 장소 - 지식인보다는 문맹인,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 젊은이보다는 노인, 남자보다는 여자의 곁 - 에 즐겨 피는 꽃에 매혹된 것이다. 그는 아웃사어디 아트의 생산자가 되지는 못한 대신, 수집가가 되었다...”


아르 브뤼트 Art Brut (아웃사이더 아트)는 장 뒤뷔페라는 프랑스의 화가에 의해 세상에 등장했다. 그는 어느 순간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된 자신을 비롯한 제도권 내부의 그것과는 무관한 또다른 예술을 발견(그야말로)하였고, 그것(아르 브뤼트, 아웃사이더 아트)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쳤다. 그는 1947년에 아웃사이더 아트 작품을 모은 전시실을 마련했고, 협회의 창설에도 이바지했다. 그렇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을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이렇게 책으로도 만들어진 듯...


“광인에게 작용하는 메커니즘은 정산인(혹은 정상인을 가장한 자)에게도 작동한다. 하지만 광인의 경우 이 메커니즘은 계속적이고 완정한 상태로 작동한다. 서구에서는 광기를 비건설적인 것으로 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광기는 건설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풍부하고 유용한, 귀중한 자산이다. 나는 광기가 인간의 재능에 불건전한 영향을 준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기는 우리의 재능을 활성화시키는 바람직한 것이고, 그것이 지금 세상에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노숙 생활을 하다 문득 여든다섯 살부터 삼년 간 1500매의 그림을 남긴 빌 트레일러, 정신분열증으로 감금되어 있던 병원의 아틀리에에서 십여년 동안 매일 8시간씩 그림을 그렸던 카를로 치넬리, ‘머나인레스트’라는 영매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매지 길, 농장이나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요제프 비틀리히,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그저 좋아서 작업을 했던 윌리엄 호킨스, 인쇄소의 기술자로 일하며 바밍면 분노를 폭발시키고 그 분노를 그림으로 만든 이냐시오 카를레스 톨라, 전업 주부로 생활하다 쉰살 무려부터 아들의 권유를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안나 제만코바, 지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비범한 기억력으로 볼펜과 매직으로 자신의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한 브룩스 요만스, 기계 제작을 특기가 있었고 정신병의 발병으로 병원에서 자작시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친 하인리히 안톤 뮐러, 중증의 정신장애 상태이지만 스스로 ‘만화’라고 부르는 그림을 항상 가는 단골 식당에서 그리는 진 메리트, 저적장애자이지만 특이한 시각 능력의 소유자인 요한 하우저, 심령술에 심취하여 죽기 전 30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 그리는 데 할애한 로르 피종, 정신병원 입원 후 누군가가 주제를 지정해주어야만 움직이는 오스발트 치르트너, 일흔 살에 갑자기 그림에 흥미를 갖기 시작해 다양한 도구로 자신을 표현한 가스통 퇴셔, 인형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으며 인형 제작 작업과 그림 작업을 하는 미셸 네자, 유아 성도착증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상태에서 집필과 그림, 작곡의 새로운 열정을 갖게 된 아돌프 뵐플리, 행동 장애로 갇힌 정신병원에서 이십여년동안 큰 두루마리에 종이를 그린 알로이즈 코르바스, 이외에도 마르틴 라미레스, 실뱅 푸스코, 사바 세쿨리치, 스카티 윌슨, 에드문트 몬셀, 마크 라미, 모튼 바틀릿, 라인홀트 메츠, 빌렘 판 헨크 등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의 그림들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장 뒤뷔페 외 / 장윤선 역 / 아웃사이더 아트 / 다빈치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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