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불안으로 인한 삶의 잘못된 소비를 막는 법...
확실히 세상은 복잡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약하다.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알랭 드 보통의 이번 에세이는 철학에 가깝다. 지위 불안, 자신의 위치와 처우에 대한 불안이라는 현대인의 사회학적인 불안증을 작가는 탐구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에서 지위 불안의 원인을 찾고,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의 정신에서 지위 불안의 해법을 찾는다. 그렇게 유럽의 여러 전통과 철학 사조를 끌어들이고, 많은 인물들의 책과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지위 불안의 원인은 갑작스레 복잡해진 세상에 있는 것이고, 지위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나마 자기 자신이라도 덜 복잡하게 세상을 이해하면 되는 것...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길고 지루하게 현대 사회에 속한 우리들의 지위, 그리고 그 지위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그리고 특히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의 지위 불안을 말하는 것 같다. 지위 불안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필요했던 시절(하지만 일부 계층에게는 지위 불안이 있지 않았을까. 사회 격변기의 왕족이나 귀족 같은 경우라면...)과 비교해서 현대인들은 그야말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심각한 정도의 불안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지위 불안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너무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설사 웃풍이 심하고 비위생적인 오두막에 살면서 크고 따뜻한 성에 사는 귀족의 지배에 시달린다 해도, 우리와 동등한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사는 것을 본다면 우리의 조건은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한다 해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옛 친구 몇 명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시달려 정신을 못 가누기 십상일 것이다.”
루소는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 부자가 되는 방법에는 돈을 많이 갖는 방법도 있지만 욕망을 억제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현학적인(소설에서조차도) 알랭 드 보통이 멀고도 멀게 돌아와서 결국 도달하는 해답은 지위에 대하여 적당히 욕망하라는 것이고,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다양한 지위에 대하여 욕망하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언제 잃을지 몰라 두려워해야 하는 지위가 있는가 하면 쉽고 잊고 지내는 지위라는 것도 있다. 직장에서의 자리나 경제적으로 이루어놓은 지위라는 것들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이나 아버지나 자식이라는 위치 혹은 누군가의 좋은 친구나 조언자라는 위치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유독 불안의 증세를 보이는 것은 바로 전자에 해당하는 자리이며, 자각 증상 없는 병처럼 잊고 지내는 것은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 아무리 우아하고 세련된 자동차라도 그 만족감은 인간관계가 주는 만족감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이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세상은 복잡해졌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현학적인 알랭 드 보통을 통과하였는데 오히려 도달하는 곳은, 어깨에 힘을 빼고서도 청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향해 열려 있는 투명한 플랫폼인 것만 같다. 아는 게 힘, 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게 약, 이기도 한 것이 세상이다. 그러니 자신의 지위에 대해 부러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을 견뎌낼 힘은 저절로 생기게 되지 않을까...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역 / 불안 (Status Anxiety) / 이레 / 2005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