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발바닥처럼, 세상 사는 일의 힘겨움...
김훈의 문체는 언제 보아도 늠름하다, 라고 하면 오버이겠지만 여타의 남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낭창낭창한 문체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의 문장은 자신이 바라보는 바를 시원스럽게 표현하며 동시에 바라보는 바의 너머에 있는 것까지를 신랄하게 바라본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어여쁘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그곳에 뿌리내린 이력을 잡아내는데 치중하는 것이야말로 김훈 문체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수몰 직전 마을에서 태어난 진돗개 수놈이다. 어미 개가 낳은 다섯 마리의 새끼 중 하나인 나는 주인할머니가 지어주는 보리밥을 잘 먹어 보리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수몰을 앞두고 한 집 두 집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며 나 보리는 점점 성장한다.
“개의 공부는 매우 복잡해. 개는 우선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해. 그리고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새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지.”
그리고 어느덧 청년이 된 보리는 수몰된 마을을 떠나 서울의 큰아들내로 떠나는 주인할머니와 헤어져 둘째 아들이 사는 바닷가로 삶의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보리는 새로운 주인의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오면 그 밧줄을 받아 쇠말뚝에 걸거나 큰딸 영희를 따라 등굣길의 뱀을 쫓으며 개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제 몸과 마음을 성장시킨다.
“나무 그늘 밑에 엎드려서 나는 바퀴가 돋아날 수 없는 내 발바닥의 굳은살을 핥았다.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굳은살이었다. 나는 개이므로 내 몸무게를 끌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다리의 힘을 모아 땅바닥을 박찰 때, 내 발바닥 굳은살은 내 몸무게를 땅바닥에 퉁겨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다. 그래서 내 발바닥 굳은살은 내가 살아온 모든 고장의 흔적과 기억들을 간직하면서 굳어져갔다. 이제는 물에 잠겨 버린 내 어렸을 적 고향의 땅바닥과 숲 속과 논두렁과 진흙탕의 기억까지도 내 발바닥 굳은살 속에는 저장되어 있다... 사람들은 구두가 낡으면 헌 구두를 내버리고 새 구두를 사 신지만 개들은 발바닥 굳은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붙일 수가 없다. 굳은살은 한 벌뿐이다. 등산화도 축구화도 조깅화도 장화도 군화도 없다. 그래서 내 발바닥 굳은살은 이 세상 전체와 맞먹는 것이고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 보리는 이웃마을의 흰순이에게 첫사랑의 연모를 느끼고, 같은 마을에 사는 사나운 개 악필이와 목숨을 건 싸움을 진행시키며 더더욱 자신을 단련한다. 하지만 그 사이 뱃사람인 새로운 주인이 바다에 나갔다가 죽고, 흰순이가 자신의 주인의 손에 의해 고기로 변하고, 사투를 했던 악필이가 전염병으로 죽는 등의 사건들을 겪으며 보리는 성장의 쾌감에 뒤를 잇는 삶의 힘겨움에 적응해간다.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바닷가 마을에서 모두 떠나가는 자기의 주인들을 바라보며 보리는 또 다른 세상으로의 진입을 준비한다.
인간에게 길들여져 있으며 그럼에도 잠재된 최소한의 동물적 야성을 가지고 있는, 오히려 그래서 인간을 이해하는(혹은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가장 가까운 동물이기도 한 개를 통해(혹은 그 개의 발바닥에 기록되는 굳은살을 통해) 김훈은 인간으로서 세상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훈 /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 푸른숲 /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