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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가는 자의 미학...

by 우주에부는바람

최윤의 글은 묵은 먼지같다, 라고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한 발 디디면 폴싹,공기중으로 흩어지는 그 알갱이들이 보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조용히 제자리로 가라앉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닥에서 사람들을 올려다본다. 읽고 나도 청소가 덜 된 다락방처럼 말끔하지 않지만,그렇게 기억의 한귀퉁이에서 언제든 청소를 기다리는 방처럼 가라앉아 있다.


「전쟁들 : 그늘 속 여인의 목선」. 스치듯 지나쳤던 어린 시절의 가장 친한 친구라 불리운 친구들 중의 한 아이를 생각하는 주인공.어른이 되어 남자 친구를 면회하기 위해 찾아간 장터에서 그 아이를 생각하는 주인공.그 장터에서 그 아이의 어머니의 목선을 가진 채소 장수를 찾아낸 주인공. 가물거리는 추억속의 여인에게서 그 목선만이 확대되어 들어오는 주인공의 어설픈 몸짓의 의미들,잘 모르겠다. 과거의 기억들이 마치 하늘거리는 머플러처럼 길고 아련하련하다.


「전쟁들 : 숲 속의 빈터」. 서울을 벗어나 얻은 전원주택. 그 전원주택의 목욕탕을 만들 준비를 하며 얻은 설레임과 끈끈한 기대.하지만 뒷산에 나타나 벌거벗은 채 자위하는 남자로 인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마을 전체에 은밀하게 공유되는 사건의 기억. 폭력이 만들어 놓은 숲속의 빈터가 사적 개인과 마을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향한 외부의 시선.솔직히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이 안 간다. 차이나 경계, 그리고 사물을 대하는 내부의 시선과 외부의 시선, 은밀한 공유(마을 사람들에겐 과거의 사건, 나와 민구에겐 목욕탕)를 마땅치 않아 하는 타자. 흠...


「창밖은 푸르름」은 불온한 상상력으로 뭉쳤던 자살 클럽의 일원들이 살아내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르트, 데드, 하데스, 데쓰라는 이름으로 자살에 대해, 아니 자살만을 이야기했던 이들은 이제 그때의 기억들을 구석에 밀어 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창밖이 푸른건가?


「파편자전:사물이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방식」은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간직하고 있다.물론 뒤집어보면 그건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영향을 미친 작가의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단지 그 시선의 근원을 제공한 것을 어디로 볼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등장사물들은 이렇다. 유성기 바늘. 톰보우 연필. 사물 창고. 상자. 체크 무늬 치마. 물 램프. 비어 있는 창고.


아, 최윤의 이 마지막 단편을 읽고 있는동안 무언가 비슷한 것이 얼핏 머리에 떠올라 지워지지 않는다 했더니, 현대문학에 연재되는 미셀 투르니에의 산문이었다. 미셀 투르니에는 그 산문들에서 인간,그리고 그 인간이 겪은 작은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비워나가는 듯 보였다. 최윤의 글이 그런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글로 완성하거나,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최윤 /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 문학과지성사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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