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한 차별화 포인트의 집요한 전략...
「저수지」. 저수지의 괴물과 컨테이너에서 자기들끼리 살고 있는 세 명의 아이, 그리고 실종되는 그녀들... 오염 물질로 가득한 세상 혹은 저수지, 실종된 사람들보다 더욱 많은 오염 물질들, 하지만 실종자도 괴물도 눈에 보이지는 않는 저수지, 그리고 저수지 주변의 세 아이... 끊임없이 독자의 후각을 괴롭히는 묘사로 코가 찡긋...
「아오이 가든」. 표제작. 후각의 자극은 계속되고, 그로테스크하면서 논리를 무시한 상황 전개도 여전하다. 전염병의 시원인 아이이 가든.... 그녀 (혹은 어미)와 다리의 성장이 멈춘 관계로 태어나서부터 쭈욱 그곳에 살아야만 했던 나... 그리고 집을 나갔다 부른배와 함께 귀환한 누이... 개구리와 고양이의 등장, 그리고 습한 이미지의 연속... ps. 아내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작가에 말에 의하면 아오이 가든은 몇 년전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싸스가 처음 발견된 중국의 아파트 명칭이라고 한다.
「맨홀」. 핏꽃이라는 표현이 섬뜩하다. 맨홀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프랑스 영화 《잃어버린 아아들의 도시》가 얼핏 생각났다. “... 나는 고꾸라지는 척하며 P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다음 P가 신발에 숨기고 있던 칼을 빼앗았다. P의 가슴팍에 활처럼 칼을 그었다. 칼은 무척 가벼웠지만 내장을 찌를 듯이 깊숙이 박혔다. 곧 P의 가슴에 새빨간 피가 스며 나왔다.” 물론 이처럼 쇠붙이에 의한 담담한 폭력 묘사는 계속된다.
「문득,」. 쉼표를 마침표처럼 사용하는 제목이라니... 그래서 그런지 다른 작품에 비해 조금 밝다, 라고 하면 좀 그렇고 일단 약간의 유머가 섞여 있다고나... 예를 들어 마라톤에 미친 남편에게 뛰는 이유를 물었을 때의 남편의 반응 같은 부분... “그냥 뛰지. 너는 왜 처멱냐? 살려고 처먹는 거 아니냐. 사는 데 이유 있냐?”(영화 《공공의 적》에서 나왔던 이성재의 대사, “사람 죽이는 데 이유 있냐?”도 동시에 떠올랐고...) 여하튼 소설은 저수지의 사체와 동굴의 여자, 그리고 마라톤에 심취했던 벽돌공 남편, 고양이 제니퍼의 이야기... 죽음과 삶의 불분명한 경계에 서있던 여자는(그래서 살아있는 여자인지 죽어있는 여자인지 여전히 헷갈리는) 결국 ‘구더기들이 양털처럼 떼지어 모여’ 있는 곳에 몸을 누인다.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 추리 소설을 읽는 남자 혹은 추리 소설 하나 온전히 읽기 힘든 주변 상황을 가지고 있던 남자... 어린 시절 발바닥에 박혔던 어항의 깨진 조각으로 인해 오그라든 남자의 발... 세탁소를 운영하는 그녀(혹은 엄마)와 얼마전까지도 나를 대함에 있어 그녀보다 더욱 포악했으나 이제 쓰려져 누운 그(혹은 아빠)... 추리 소설처럼 번듯하지 않은 나의 살인 이야기 혹은 삶의 이야기...
「만국 박람회」. “... 삼촌은 칼로 개의 명치가 갈라진 윗부분을 조금 잘랐다. 칼날이 너무 커서 자칫하면 살을 벨 수도 있었다... 명치가 갈라진 개는 신음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삼촌은 갈라둔 작은 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개는 여느 때보다 크게 울부짖었다. 죽음을 감지하고 울부짖는 소리였다. 그때까지 여리게 뛰고 있는 맥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삼촌의 일은 끝났다...” 수재민과 만국 박람회와 삼촌과 나... 삼촌이 펼치는 초라한 마술과 세기의 마술사의 공연...
「서쪽 숲」. 그 내용은 전혀 모르는 채 약국에서 일을 하며 약국 주인의 명을 받아 의뢰받은 서류를 의뢰받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는 여자... 서류 봉투의 내용은 전혀 모르는 채 서류를 운반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삼는 여자... 사실 서류 봉토 속의 내용물은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중요한 일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중요한 일의 내용을 모르는 법이니까...
「마술 피리」. 실험용 쥐인 루루, 한 달동안 단백질이 완전히 제거된 사료만을 먹음으로써 어떤 상태로 변하는지를 인간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루루... 그리고 천식에 걸려 있으며 엄마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영양 실조에 걸려 있으며 놀이방에서 다른 아이들과 전혀 섞이지 못하는 미아... 루루와 미아의 보호자 역을 하는 대학생인 나...
「시체들」. “... 청각은 사람의 감각 중에서 제일 늦게 죽는다고 했다...” 아, 그렇군... 왠지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청각이 사람의 감각 중에서 제일 늦게 죽는 거라면, 가장 빨리 죽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제일 늦게 죽는 청각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물론 소설은 이 내용에 관한 것은 아니다. 삶의 벼랑에 몰려 계곡에 간 아내와 나... 하지만 아내는 잠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계곡 물에 떨어져 휩쓸려 가버렸다. (나는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찰은 계곡에서 다리가 발견되고 손이 발견되고 두상이 발견될 때마다 나를 불러 그것이 아내의 신체 일부인지 확인해보라 한다. 그리고 이제 나 또한 아내가 들어갔던 그 차갑고 어두운 계곡의 물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실종, 절단된 신체, 지하, 동굴, 어두운 어린 아이, 습지 동물이나 박쥐, 구더기, 쥐... 그리고 찌르고 자르고 묻고 실종되고 사라지고 빠지는 인물들... ‘시체들의 괴담, 하드고어 원더 랜드’라는 책의 뒤에 붙은 해설 제목과 책에 실린 소설들이 전혀 다르지 않다. 등단 후 첫 번째 소설집이면서도 자신의 등단작인 「이슬털기」를 배제하면서까지(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키고자 한 이 작가의 하드고어한 이미지들... 일단은 사심 없이 감상했고 조금은 갸우뚱... 이러한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방향을 선회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편혜영 / 아오이가든 / 문학과지성사 / 2005
ps. 책을 모두 읽고 소설의 표지를 바라보다 문득, 이토 준지의 만화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표지의 그림도 그렇거니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소재, 묘사, 내용의 전개 등이 얼핏 맞닿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