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기자정신의 산문적 발현...
아마 문학동네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신문기자 출신의 이 작가가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평론가들과 소설가들은 오버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정도의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지지의 대부분은 바로 김훈의 문체에 초점이 맞추어지고는 했다. 나또한 덩달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할까 하였지만 부화뇌동하기 싫어 혼자만 조용히 음미했던(나 정말 못됐다) 기억이 있다.
사실 정확하게 그의 문체가 어디가 어떻게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그의 문학작품들이 많지 않거니와(게다가 난 『칼의 노래』를 읽지 못했다. 이상하게 전기적 작품들을 읽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어린 시절 위인전의 남독이 낳은 병일까?) 제대로 읽지를 못하여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논리적 감성의 문체라고 부르면 어떨까? 작가가 표현하는 감성의 수위가 꽤나 심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그저 감성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끝끝내 제 논리를 잃지 않음을 통해 보여주는 서술의 힘 같은 것을 그의 작품들을 닮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힘은 그의 다양한 글쓰기 영역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이 작품을 접하기 전에 읽었던 『자전거 여행』이 일종의 여행 중의 사유를 깊고 융숭하게 설파하고 있는데 반하여 『밥벌이의 지겨움』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작고 아담하지만 살펴보면 필유곡절의 일상을 구석구석 전전한다. 때문에 그의 빛나는 문체의 특질들을 살피는 데에는 불리하지만 김훈이라는 작가의 세상살이에 대한 시선의 일단을 살피는 데에는 꽤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그로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지어다. 간간히 그는 가슴 뜨끔하도록 시큼짭짤한 문장들도 빼놓지 않는다.
“바람이 잠들고, 햇빛이 무서운 날에 가장 굵은 소금이 온다. 소금은 낱알이 굵고 입자가 안정되어 있고, 향기로운 알맹이를 으뜸으로 친다. 짠맛 안에 바닷물의 향기와 햇빛의 향기를 모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증발이 깔끔하지 않아서 불순물이 남아 있을 때, 소금은 쓰다. 이런 소금은 나쁜 소금이다. 바람이 불어서 염전 바닥의 물이 흔들리면 소금의 입자는 불안정해진다. 좋은 소금은 폭양 속에서 고요히 온다.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날에, 가장 향기로운 소금은 인간에게로 온다.”
게다가 카운터펀치도 잊지 않는다.
“나는 자연사한 새들의 주검을 본 적이 없다. 숲 속의 그 많은 새들이 어디로 가서 죽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내 창 앞 모과나무 가지에서 우는 새도 내가 모르는 어디론지 가서 죽을 것이다... 새들은 올 길 갈 길에 하늘에서 죽어서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것인가. 새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 가면서 날아오고 또 날아오지만, 새들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뭐 이쯤대면 이건 산문이 아니라 시가 된다.
물론 그의 생각들 모두가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주섬주섬 쉽게 주운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정갈함 속에서 따뜻하려는 노력을 잊지 않은, 잊혀져가는 기자 정신의 산문적 발로에는 갈채를 보내고 싶다.
김훈 / 밥벌이의 지겨움 / 생각의나무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