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물건)에 대한 끈끈한 애정은 가능한가...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는 일의 어려움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불거져 나온다. 그러니까 폴 오스터의 새로나온 소설인가? 제목이 타자기를 치켜세움이라니? 정말 재미있겠는 걸? 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청한 책을 열어봤다가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80쪽 안팎에 180g 이상의 아트지로 만든 책은 외근을 나와 역삼역에서 지하철에 오르고 도착지인 을지로입구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성수역 쯤에서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
책의 내용은 조금 긴 에세이 정도이고, 그 틈을 샘 메서라는 사람의 그림이 메꾸고 있다. 내용은 그러니까 어마어마하게 간단하다.
1974년 폴 오스터는 자신이 쓰던 소형 헤르메스 타자기를 여행 중에 망가뜨렸다. 그래서 대학시절의 친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1962년에 졸업선물로 받은 타자기를 40달러에 주겠다 하여, 그 타자기를 얻었는데 바로 그 올림피아 포터블 타자기로 지금까지 글을 써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그 타자기는 간혹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작은 수리와 부품의 교체만으로도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의 타자기에 대한 애정이 찐하게 묻어나는 글은 우직해 보인다. 그것이 글을 쓰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정말 타자기를 아끼고 아껴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는 느낌이다.
“유라눈 지금까지 4반세기 이상의 시간을 같이보냈다. 내가 어느 곳으로 가건, 그 타자기도 나와 함께 갔었다. 우리는 맨해튼, 뉴욕 주 북부, 그리고 브루클린에서 살았고 캘리포니아와 메인으로, 미네소타와 매사추세츠로, 그리고 버몬트와 프랑스로 함께 여행했다. 그 기간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연필과 펜으로 글을 썼고, 몇 대의 자동차들과 몇 대의 냉장고들, 그리고 몇 곳의 아파트와 집들이 나를 거쳐갔다. 또 나는 수십 켤레의 신발을 닳아 해지게 했고 수십 벌의 스웨터와 재킷들을 입다 버렸고 수많은 손목시게와 자명종과 우산을 잃어버리거나 내버렸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낡아 못쓰게 되어서 결국에는 그 용도를 잃게 되지만 내 타자기는 지금도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내가 26년 전에 소유했고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물건은 그것 하나뿐이다. 몇 달만 더 지나면 그것은 정확히 나와 반평생을 함께 한 셈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게도 혹시 그런 물건이 있나 찬찬히 둘러본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은 십오 년쯤 된 책상(그나마 다행이다. 난 이 책상을 88년도에 내 것으로 받아들여 처음엔 책만을 올려놓는 것에서, 다음엔 컴퓨터를 함께 올려 놓고, 이제는 미니 오디오까지 올려놓는 용도로 발전시켰다, 대신 이곳에서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이다. 반평생을 같이 한 물건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따를뿐더러 난 책상을 끔찍이 아껴본 기억이 없다.
그렇담 뭐가 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구입한 책들이 몇 권 남아 있기는 하지만, 누렇게 뜬 그것들을 보면서 너희들을 사랑하노라, 라고 말할 염치도 없다. 십여 분을 생각하고 돌아다니고 서랍을 뒤지고 야단법석을 떨며 집안 구석구석의 물건들을 훑어보지만 어림없다.
하지만 뭐... 불현듯 사라지는 것들 그 흔적조차 말끔히 지우는 것, 낙오한 낡은 것들이 풍기는 불쾌한 기분을 맡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야 이 밤 잠들 수 있으니...
폴 오스터 / 황보석 역 / 타자기를 치켜세움 (The Story of My Typewriter) / 열린책들 / 80쪽 / 2003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