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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 《지구 끝의 사람들》

재미와 흥미만점의 반전대신 차분한 환경운동소설...

by 우주에부는바람

*2006년 10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스포츠 뉴스의 말미에 산악인 박영석씨가 남극점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잠깐 실렸다. 에베레스트 14좌를 등정했고, 남극점을 밟았으니 이제 북극점만 밟으면 무슨무슨(산악 이었나) 그랜드슬램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의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방향은 자신의 내부를 향해 있다. 나약한 인간과 위대한 자연이라는 대립 속에서 나약한 인간의 의지를 극도로 끌어올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루이스 세플베다의 『지구 끝의 사람들』은 위대한 인간과(또는 포악한 인간) 나약한 자연이라는 대립 속에서 나약해 보이는 자연의 의지가 어떠한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칠레 태생의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은 아니고 열 여섯 소년의 시절), 칠레 남쪽 남극을 코앞에 둔 지구 끝의 퐁광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뱃사람들과 짧지만 내 인생에 강한 인상을 주는 경험을 한다. 여행의 말미 나는 고래를 사냥하는 배에 올라타게 되는데 뱃사람 비스코씨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친구, 자네가 고래잡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무척 기쁘군. 사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래들이 줄어드니, 어쩌면 이 지역에서 우리가 마지막 고래잡이 선원들이 될지도 모를 거야. 그렇지만 잘됐지 않은가. 이제 우리도 고래들이 평온하게 살아가도록 놔둘 때가 되었어. 나의 증조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그분들은 다들 고래잡이 선원이었지. 내가 만일 자네 같은 아들이 있었다면, 다른 길을 가라고 충고했을 거야.”


그리고 이십사년이 흐른 나는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프리렌서로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고래잡이 선원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어느 날 의문의 사건 소식 하나가 날아든다. 이십사년전의 바로 그곳에서 벌어진 일본 선박 <니신마루 호> 선원들이 한꺼번에 십여명 다치게 되는 사건이 그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유럽에는 자칭 근대화의 대변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신문 지면에 등장하여 자연 보호를 <환경 숭배>로 경시하거나, 새로운윤리에 맞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면서 자신의 집을 태우는 얼바진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이 말은 파괴를 옹호하는 철학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격언인 셈이다.”


라고 생각하는 환경주의자(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십사년전의 그 여행을 통해 나름대로 체득된 환경주의자로 보이는)인 나는 그 사건의 내막을 알기 위해 지구 끝의 세계를 다시금 찾아간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르는바 스토리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은 부득불 피하기로 하자.


웃음이 내내 떠나지 않을만큼 재밌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반전이 빠져 있는 대신, 소설은 자연환경을 향한 인간의 무자비하고 근시안적인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의 조직성과 교활함을 보여주는 데에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루이스 세플베다라는 소설가가 지니고 있는 순수하고 맑은 작가적 영혼을 탐구하는 재미쯤으로 눈금을 맞추어 놓고 책을 읽으면 좋겠다.



루이스 세풀베다 / 정창 역 / 지구 끝의 사람들 / 열린책들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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