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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2시간전

파스칼 키냐르 《하룻낮의 행복》

밤은 하룻낮의 밝혀지지 않은 이면, 극대화된 불안한 속성...

  나의 밤은 포기를 모른다. 밤은 사라진 빛을 향한 구애의 시간이 아니라 아직 빛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을 향한 되풀이되는 기억이다. 키냐르 식으로 말하자면, ’마지막 왕국(출생 이후의 삶)‘에서 ’최초의 왕국(출생 이전의 삶)‘을 답습하는 시간, 인데 나는 여전히 키냐르의 또 다른 ’마지막 왕국‘ 시리즈가 번역되어 당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밤은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꽃에 관한 연쇄 추리, 우리는 꽃에 순응함으로써 계절에 순응합니다. 계절에 순응함으로써 자연의 비영속성에 순응합니다. 자연의 비영속성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나아가며, 다가오는 계절의 시간에 맞추어 꽃이 핀 가지를 불현듯 꺾음으로써 삶과 죽음의 순간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죽음에 바쳐진 제물은 죽음을 향해 죽음이 좋아하는 냄새를 발산합니다. 꿈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향기지요. 밤의 포착할 수 없는 세계에서 냄새도 꿈으로 변했으니까요.” (pp.56~57)


  어둠은 불화를 덮는다. 어둠 속에서는 보다 쉽게 명사에서 명사로 나아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형용사는 과분하다. 동사는 멈춰 있어도 고분고분하다. 동사와 형용사가 별다른 불화 없이 하나의 어둠에 갇힌다.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도코노마‘ (일본의 건축중에, 방에서 어떤 공간을 마련해 인형이나 꽃꽂이로 장식하고, 붓글씨를 걸어 놓는 곳)를 향하여 앉은 나는 멈춘 단어들을 바라본다. 


  “일본에서 미는 광휘가 아니에요(가령 수메르에서처럼 미는 빛남을 의미하지 않아요). 섬나라에서 미란 오히려 태어나는 가장 초기의 생명체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애정입니다. 가령 가장 허약한 존재, 가장 어린 것, 가장 갓난아기, 가장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가장 덧없는 것, 새싹, 새끼 고양이, 곤충, 강아지, 분재盆栽, 끝으로 아직 끈적거리는 정액에 젖어 빛을 받은 유약처럼 번질거리며 바야흐로 벌어지려는 찰나의 꽃송이 같은 것들 말입니다.” (p.52)


  움직임은 멈추고 윤곽은 흐려진다. 나의 이마 한복판에는 간지럼이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한동안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군가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나를 오해했다. 나는 세상과 불화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불화하는 중이었다. 나는 화해를 단속하였고 음주를 가속하였다. 어느 날 감쪽같이 간지럼이 사라졌다. 아무도 오해하지 않았다. 사람들도 다수 사라졌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짐승들처럼 하늘에서 달을 읽었다. 달이 사라지기 전에, 필연적으로 동이 터오는 대기에서 표면이 점차 흐려지다가 돌연 윤곽마저 지워지기 전에.

시간 여유가 있으면 구름이 없는 저녁에, 석양에, 밤에 달의 변모를 바라보기란 확실히 인간의 가장 오래된 독서의 기본이다.” (p.72)


  빛이 머무는 동안 시간을 조인다, 빛이 떠난 이후에도. 시간은 그렇게 마모된다. 어둠이 떠난 자리에서, 어둠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조인다. 시간은 부식하고 나는 깊게 저무는 중이다. 심연의 신음을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인다, 거기에 이제 막 태어난 시간이 아직 있기라도 한 것처럼. 기다림은 다가가지 않으면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이 없을 때의 기다림은 그저 공백이다. 


  “새들의 말은 아주 간략해서 / 화답할 겨를조차 없이, / 짧은 시퀀스와 빈도 높은 단속음의 빠른 반복으로 / 허공에 새겨진다 / 그것은 몇 초간 지속되는 음들의 목걸이다. / 돌연한 짧은 멜로디들은 욕망이 담긴 결여 속에서 들러붙고 매달린 채 / 허공에서 기다린다. / 부름 자체가 기다리는 기다림의 한가운데서, / 부름이 울려 펴질 정도로. // 노랫소리의 단편들. / 말의 단편들. / 실재하는 텍스트는 결코 광대하지 않다.” (p.122)


  조각난 단어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퍼즐을 맞추기보다 흩어진 것들을 더욱 흐트러뜨린다. 완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미완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완성의 속성에 기대어 행복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밤의 거리는 야속하고 흐릿하다. 어둠 속에서 거리는 가늠되지 않는다. 밤은 하룻낮의 반대편이 아니라 하룻낮의 밝혀지지 않은 이면이다. 밤은 하룻낮의 불안한 속성이다, 극대화된...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 송의경 역 / 하룻낮의 행복 (Une Journée de Bonheur) / 문학과지성사 / 188쪽 / 20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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