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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8시간전

아멜리 노통브 《너의 심장을 쳐라》

여성에 의한 여성을 향한 여성의 심경으로 가득한...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의 어느 소도시에 사는 마리는 아주 매력적인 아가씨이다. 파리에서라면 다르겠지만 그 소도시에서는 충분한 인기를 누렸고 결국 그 도시에서 가장 잘 생긴 청년과 결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마리가 원하는 것이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이를 가졌고 결혼은 선택사항아 아니었다. 그녀는 한계를 정하지 않을 정도로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거짓말이었다. 지난 아홉 달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아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만약 아기를 생각했다면 아마도 미워했을 테니까. 그녀는 본능적인 대비책에 따라 임신 기간을 긴 부재처럼 살아 냈다.” (p.17)


  마리는 스무살에 첫 번째 딸 디안을 낳았다. 올리비에는 여신의 이름인 디아나를 딸에게 헌사하였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정말 어여쁜 아이였다. 모든 이들이 아이를 칭찬하였고 아이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디안을 낳은 마리만은 제외해야 했다. 디안을 낳으면서 마리는 자신의 청춘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무살이었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 딱 한 번, 엄마가 나에게 사랑을 표현한 적이 있었죠. 그때 난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딸이라서 엄마가 사랑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서 엄마가 여태껏 보여 준 것 중에 가장 깊은 사랑을 퍼붓는 대상은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나의 설명이 무너지고 있어요. 이제는 엄마가 나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안중에도 없으니 저 아기에 대한 터무니없는 열정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거겠죠. 엄마, 사실 엄마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바로 눈치가 없는 거예요.” (p.58)


  마리의 이러헌 심경을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디안만은 정확히 알아보았다. 디안은 자신을 질투하는 엄마, 자신을 밀어내는 엄마를 아주 어린 나이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마리는 디안의 남동생인 니콜라를 낳았다. 마리는 디안에게와는 달리 니콜라에게 애정을 표현하였고 디안은 니콜라가 남자 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인의 여동생인 셀리아를 낳고, 그녀에게 집착하는 마리를 보고 디안은 결국 무너져내린다.


  “엄마, 나는 엄마의 질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 보답으로 엄마는 내 앞에 구렁을 파놓았어요. 마치 엄마가 빠진 그 구렁에 나도 빠트리고 싶다는 듯이. 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나는 엄마처럼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구렁에 빠지지 않고도, 구렁이 부르는 소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비명이 터져나올 정도로 아파요. 마치 주변의 공허가 날 물어뜯는 것 같아요. 엄마, 나는 엄마의 고통을 이해해요.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엄마가 날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엄마는 나와 고통을 나누려 하지 않아요. 내가 힘들든 말든 엄마한테는 마찬가지예요. 보이지도 않거니와 안중에도 없죠. 그게 가장 가슴이 아파요.” (p.59)


  디안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자신이 만난 의사를 통해 의사로서의 꿈을 키운다. 그녀는 심장외과를 택하는데 그것은 알프레 드 뮈세의 시구 <너의 심장을 쳐라, 천재성이 거기 있으니>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학교에서 만난 오뷔송 올라비아 선생에게 말한다. 디안은 올리비아와의 인연에 깊숙이 천착하지만 올리비아는 그녀를 온전히 끌어안지 못하였다. 


  “대단한 인물이네요! 놀라운 직관력이에요! 그의 말이 맞았다는 거 알아요? 심장은 어떤 기관과도 달라요. 옛사람들은 생각, 영혼······ 뭐 이런 것의 본산으로 봤는데 그럴 만해요. 나도 20년 넘게 연구하고 있는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신비롭고 기발하거든요.” (p.103)


  여성에 의한 여성을 향한 여성의 심경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마리의 딸 디안은 벗어났지만 올리바의 딸 마리엘은 벗어날 수 없었던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독자인 나는 고작 남자일 뿐이다.)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심리 묘사, 그러니까 인격 형성 이전의 어린아이의 심리도 놓치지 않는 집요함이 느슨하게(?) 다뤄지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아멜리 노통브의 집필 욕구는 끝이 없는 듯하다. 



아멜리 노통브 Amélie Nothomb / 이상해 역 / 너의 심장을 쳐라 (Frappe-toile Coeur) / 열린책들 / 194쪽 / 20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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