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혼동’이 아니라 ‘혼연일체’로 마무리 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이 말이 도이치의 머릿속에 번뜩 되살아났다. 그는 이 농담을 독일 동중부의 대학 도시 예냐에서 유학하던 시절 높직한 언덕에 있는 교외 하숙집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요한이라는 미술학도에게 들었다...” (p.22)


일본독일문학회의 회장이며 괴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히로바 도이치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가족 식사 후 티백에 달려 있는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 라는 꼬리표를 발견한 다음이다. 하필이면 도이치의 티백에 달려 있는 꼬리표가 괴테의 말이어서 그 인연을 실감하긴 하였으나 정확한 출처를 떠올리지 못한 탓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번에는 일본어로 옮겨봤다. 그러자 조금은 괴테스러워졌다. 그때 도이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물론 잼과 샐러드였다. 사랑은 모든 사물을 잼처럼 혼동시키지 않고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렇게 파우스트 박사처럼 자기식으로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mix’를 어떻게 해석할지 아직 뚜렷한 확신이 없었다. ‘confuse(혼동하다)’, 말하자면 잼적 도이치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서 ‘mix(뒤섞다)’를 일단 샐러드적 도이치로 해석했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pp.44~45)


일단 도이치는 티백의 문구를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저서 『괴테의 꿈―잼인가? 샐러드인가?』에서 주창하고 있는 세계관과 대응시킨다. 그러니까 문구에서의 혼동하다confuse는 잼적 세계로, 뒤섞다mix는 샐러드적 세계로 대립시킨다. 하지만 이 티백 꼬리표의 원문 출처를 발견하지 못하니 선뜻 자신의 해석에 힘을 부여하기 힘들다.



『“세계는 죽이나 잼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딱딱한 음식을 씹어야 한다.” -「격언풍으로」에서


“세계는 말하자면 안초비 샐러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뒤섞어 먹어야 한다.” - 「비유적 및 경구풍으로」에서


... 그의 말에 따르면 잼적 세계란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 샐러드적 세계란 사물이 개별적 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킨다...』 (p.41)


소설은 이처럼 독일문학 특히나 괴테 전문가인 도이치 교수가 티백 꼬리표의 명언 출처를 찾는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료 교수인 시카리, 논문을 쓰는 중인 딸 노리카, 시카리의 제자이자 노리코의 연인임이 밝혀지는 스즈키, 아내인 아키코와 아키코가 좋아하는 유튜버인 베버와 애초에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문구를 알려준 유학 당시의 친구인 독일의 요한까지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그나저나 명언이란 역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야 의미가 있는데, 일단 말한 사람이 정확히 전해지지도 않고 명언 자체가 온전히 전달되는 일도 드물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사람이 파스칼이라는 건 당연히 누구나 알겠지만, 요전에 설문 조사를 했더니 일부 학생들이 ‘생각하는 갈빗대’―놀라지마, 우리 몸속에 있는 그거 말이야!―로 착각하고 있더래. 그러니까 언젠가는 갈빗대로 바뀔지도 모르지. 즉 명언은 분명 유명한 위인의 유명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익명성과 무개성이 조건이 되는 셈이야. 혹은 맥락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온갖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 활용도 만점의 말이거나...” (p.80)


소설은, 검색창에 입력만 하면 관련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AI의 시대에 그 반대편을 조명하고 있는 것만 같아, 오히려 신선하다. 챗GPT든 제마니이든 코파일럿이든 필요한 내용을 묻고 실시간으로 답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소설 속 도이치는 자신의 저서와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고, 알법한 많은 이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급기야 꼬리표에 실린 말의 출처를 찾아 독일을 방문하는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사상 전체가 아니라 파편으로 이해되지. 실언 하나로 커리어가 박살 나는 정치가나 연예인은 그 나쁜 예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어. 예컨대 괴테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속 한 마디만으로 이 철학자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전에 중국 작가 모옌이 그 유명한 소설 『백년의 고독』을 몇 장밖에 안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명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 결국 작가나 사상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뭇잎 한 장으로 자신의 숲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잖아. 그렇다면 우리들 독자 쪽에서도 그 책 중 한 장으로 새로운 사원을 짓지 않으면······.” (p.168)


이러한 소설을 스물 세 살 나이의 작가가 썼다는 소설도 조금은 놀랍다. 연간 1,000여 권의 소설을 읽는다는 작가는 일종의 백과전서파라도 된 듯 수많은 작가와 문헌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경험과 사실을 근간으로 하는 추리가 단순한 딜레탕트의 수준을 넘어서는 주인공을 통해 완성되어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소설 자체가 ‘혼동’이 아닌 ‘혼연일체’로 마무리 되니 성공적이다.


『“지난번 꽃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소 특이한 모양이지만 향기는 분명 장미와 비슷하니 참 신기했습니다. 친구에게 보여주자 이런 것도 꽃이냐며 놀라더군요. 하지만 실로 조물주의 사랑은 하나의 꽃에서 모든 꽃을 싹트게 했습니다. 그걸 알면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혼란 없이 뒤섞이리라 믿을 수 있습니다. - 괴테”


... 이 문장을 베버 씨가 “조물주의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 없이 뒤섞는다”라고 요약했고, 그걸 본 중국인 명언 사이트 운영자가 조물주를 빼고 영어로 옮겼다. 그것을 미국 티백 회사에서 발견한 자사의 티백 꼬리표에 명언을 실었다...』 (p.216~217)


스즈키 유이 / 이지수 역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리프 / 245쪽 / 20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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