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존슨 《기차의 꿈》

운명의 가혹 함 아래에서도 후회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말끔한...

by 우주에부는바람

“어렸을 때 그레이니어는 혼자 아이다호까지 가야 했다. 출발지가 정확히 어딘지는 몰랐다. 가장 나이 많은 사촌과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사촌의 말이 달랐고, 그레이니어 본인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사촌은 또한 자기가 그레이니어의 사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장 나이 많은 사촌은 사촌이 맞다고 말했다. 그레이니어가 어머니처럼 생각한 사촌들의 어머니는 그의 고모였다. 그레이니어가 기차를 타고 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촌 세 명이 모두 동의했다. 그가 어쩌다 친부모를 잃었는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p.32)


영화 〈기차의 꿈〉을 본 것이 지난해 십일 월이다. 원작에 꿈과 환영이 난무한다는 정보를 (어디에서 들었는지) 듣고 책 읽기를 미뤘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와 비교하여 오히려 현실에 안착해 있는 것이 책인 듯하였다. 영화가 아주 좋았는데 책도 못지 않게 좋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속 중인공(의 눈앞에 그려진 이미지)에 의해 도발되던(?) 감정이 없으니 마음이 좀더 차분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여기저기서 일을 하며 20대를 보냈다.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떤 것에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청년이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서른한 살에도 그는 여전히 장작 패는 일, 트럭에 짐 싣는 일을 하거나, 그보다 더 진취적인 사람들이 형성한 다양한 무리 속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잠깐씩 했다.

그러다가 글래디스 올딩을 만났다...” (p.43)


그레이니어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기차를 타고 친척의 집에 갔다. 거기서 기거하며 자랐고 일을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감정을 쉬이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그레이니어는 조금 늦은 나이에 글래디스 올딩을 만난다. 그레이니어는 자신이 사 놓은 숲 속의 작은 땅에 글래디스를 데리고 갔고 결혼을 했으며 딸 케이트가 생겼다.


“결혼한 지 4년도 되지 않아 홀아비가 된 그레이니어는 옛날 집이 있던 자리 아래쪽의 강가 움막에서 살았다. 밤이 깊은 뒤에도 최대한 모닥불을 살려놓았고, 동이 틀 때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는 꿈이 무서웠다. 처음에는 글래디스와 케이트가 꿈에 나왔지만, 나중에는 글래디스만 나왔다. 그렇게 혼자 침묵 속에서 두어 달을 보낸 뒤에는 꿈에 모닥불만 나왔다...” (p.85)


하지만 그를 향한 운명의 가혹함은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한다. 커다란 불이 숲을 휩쓸었고, 숲 속 그의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게 되었다. 글래디스와 케이트 또한 사라졌다. 죽었다, 라고 말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레이니어는 자신의 집이 있던 근처에서 많은 걸 버텨냈다. 그는 다시 집을 지었고 이제 일을 하기 위해 멀리 나가지 않았다. 말과 수레를 가지고 근처에서 일을 했다.


“... 비행기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가파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레이니어의 장기들이 척추에 달라붙었다. 여름밤에 오두막에서 아내와 딸이 후두의 사르사를 마시던 순간이 보였다. 그다음에는 기억 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다른 오두막이 나타났고, 그의 숨겨진 유년 시절에 갔던 장소들, 광대한 황금빛 밀밭, 길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는 열기, 그를 감싼 두 팔, 다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차례로 나타났다. 이번 생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이었다...” (p.95)


영화에서는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소설에서도 아주 좋다. 나는 그레이니어가 느끼는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그레이니어는 평생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살았으니 그가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한다면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그레이니어는 급강하의 순간, 자신의 시작부터 바로 지금까지를 주마등 아래에서 훤하게 확인한 것이다.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것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단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자주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10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 (pp.128~129)


그레이니어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는 최저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삶을 살았나? 아니면 생의 순간순간의 많은 것을 빨아들인 다음 뒤섞어 평준화시킬 수 있는 평탄한 삶을 살았나? 하지만 삶이 어떤 것이든, 해석하기 힘든 운명의 순간들이 모두 지난 다음, 우리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다만 여기 그 후회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게 말끔한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이 있다.



데니스 존슨 Denis Johnson / 김승욱 역 / 기차의 꿈 (Train Dreams) / 다산책방 / 139쪽 / 202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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