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이야기를 들려줘요》

충동으로 요동치는 시간을 흡수하여 온전해지는 삶을 위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읽고, 점심으로 바게트 샌드위치와 양송이 수프를 먹고 또 읽었다. 밥과 루시의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챕터를 읽다가 혼곤해져 책을 덮고 낮잠에 빠졌다. 잠에 들기 직전 몸이 이완되며 소파로 가라앉는 동안 두 사람이 걷는 강가와 나란히 의식이 흘렀다. 대화를 엿들었다. 잠에서 깨어 나머지 부분을 읽고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이것은 밥 버지스의 이야기다. 메인주 크로스비 타운에 사는 키 크고 체격 좋은 남자인 그는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하는 시점에 예순다섯 살이었다. 밥은 너그러운 사람이지만,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그는 스스로가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자신의 삶에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이 있고, 그런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있다.“ (p.1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작가를 좋아해서 그가 쓴 세 가지 계통의 소설들을 모두 읽었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주요 등장 인물인 《올리브 키터리지》(2008), 《다시 올리브》(2019)가 하나의 계통이고, 루시 바턴이 중심에 서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2016), 《무잇이든 가능하다》(2017), 《오, 윌리엄》(2021), 《바닷가의 루시》(2022)가 또 다른 계통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계통은 제3의 인물들을 내세운 《버지스 형제들》(2013), 《에이미와 이저벨》(1998)이다.


“밥은 팸이나 그녀의 음주, 여자 옷을 입는 그녀의 아들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머릿속에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올리브가 루시에게 해주었다는, 결혼해서 유령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그게 떠오른 건, 팸에 대해 루시에게 이야기하면 루시는 관심을 보일 거야, 하고 그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p.119)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줘요》(2024)에서 이 세 갈래의 계통이 하나로 합쳐진다. 혹시 이렇게 소설 작업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인가 의혹이 들었다. 올리브 키터리지와 루시 바턴은 물론 밥 버지스가 중요 인물로 등장하며 이외의 많은 인물들이 이번 소설에 등장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와 함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주로 루시 바턴이 올리브 키터리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때로 올리브가 루시에게 이야기를 한다.


『올리브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 말에 정말로 웃었다. “루시 바턴, 당신이 내게 해준 이야기도―내가 말할 수 있는 한―요점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요, 그래요. 미묘한 요점은 있었겠죠. 이 이야기의 요점이 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사람들” 루시가 뒤로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 그리고 저마다 살아가는 삶. 그게 요점이에요.”

“바로 그거예요.” 올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p.351)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의 어느 지점에서 때로는 소설 속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서 감정이 출렁였다. 밥의 형인 짐과 그 아들인 랠리 사이의 화해 그리고 머디에게 린치핀(수레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을 말한다)이었던 샐리의 이야기라는 돌출부에서 그랬다. 작가는 정확히 어느 한 포인트에서 벌어지는 충동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충동이 건네는 요동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는 삶을 보여준다.


“... 사랑은 많은 형태로 찾아오지만, 사랑은 늘 사랑이에요. 그게 사랑이라면, 그건 사랑이에요... 올리브는 이제 몸을 일으켜, 그 이야기를 해주려고 지팡이를 짚으며 다리 건너 이저벨에게 갔다. 하지만 이저벨은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올리브는 앉아서 기다렸다. 그녀는 이저벨의 얇은 가슴팍이 작게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관절염 때문에 뒤틀린 늙은 손에는 자주색 혈관이 비쳐 보였다. 사랑은 사랑이다. 올리브는 기다리면서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p.509)


소설 《이야기를 들려줘요》에서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제 아흔 살이다. 루시 바턴은 예순여섯 살이고 밥 버지스는 예순다섯 살이다. 소설의 첫 번째 문단에서 작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기록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두 문단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어떠한 형태로 찾아오건 결국 사랑은 사랑이라고. 세 사람이 고군분투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 정연희 역 / 이야기를 들려줘요 (Tell Me Everything) / 문학동네 / 525쪽 / 20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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