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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김혜경 《아무튼, 술집》

나는 이제 집에서 마시는 혼술에 최적화되었지만...

*2021년 12월 1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에 가입한 바로 그날 선배들과 함께 술집으로 향했다. 홍대 시장통(이라고 부르던 곳에) 있는 술집이었는데, 바닥은 콘코리트로 마무리 되어 있었고 (일명 공구리라고 부르는) 테이블이라고 해봐야 서너 개가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입학 후 첫 번째 만취였고, 86학번 선배네서 잤다. 홍대 앞의 규모가 지금의 천분의 일쯤(?)일 때의 이야기이다. 


  “아빠는 요리 솜씨가 좋은 여자친구가 생기면 한 손 가득 반찬들을 들고 오기도 했다. 건강한 단맛을 곁들이기 위해 씨를 뺀 참외를 넣고 담근 깍두기라든가, 호두와 검은콩을 넣고 조린 멸치조림이라든가, 내가 모르는 어떤 집 안의 냄새까지 우려진 듯한 사골국 같은 것들이었다. 재료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는 걸, 같은 이름이 붙은 반찬이어도 무한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p.9)


  생각해보면 그때 홍대 앞의 술집을 다 합한다고 해도 서른 개나 되었을까 싶다. 술집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밥도 팔고 찌개도 팔고 라면도 팔고 술도 파는 형태였다. 홍대 정문 앞에는 계단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술을 마시다 보면 전경들이 와서 그 앞으로 자리를 잡고는 했다. 얼른 학교 쪽으로 넘어가서 화염병을 던질 것인지, 오늘은 그냥 술이나 마시며 술집 문에 덧댄 나무문 틈으로 구경이나 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꽃에서의 강렬한 액땜 이후 술에 대한 나의 사랑은 꽃의 지하처럼 더욱 깊어졌다. 다쳐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새살은 어떻게든 돋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으니까. 인간은 생각보다 완전하지 않아서 언제든 터질 수도 꿰매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속이 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p.35)


  가장 많이 맥주를 마신 곳은 핑크 플로이드라는 술집이었다. 그게 가능한가 싶을만큼 많은 생맥주를 그곳에서 마셨다. 만 씨씨를 넘겼다고 하면 나도 믿어지지 않는다. 젊을 때였고, 형으로 기억하는 걸 부면 핑크 플로이드의 주인도 젊었다. 그 형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계절에 한 번쯤 귀가를 했다. 그렇게 계절에 맞는 옷으로 갈아 입고 집을 나오면 계절이 바뀔 때까지 바깥에 머물렀다. 물론 과장이다.


  “술을 마셔야 살 것 같은데 술을 마시면 죽을 것 같다. 몸은 술을 한사코 거부했는데 마음은 술에게로 끊임없이 달려간다. 술은 몸이 마시는 게 아니라 마음이 마시는 거란 생각도 든다. 몸은 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분 나쁘게 답답해지는 열기도, 과도한 배부름도, 역겨운 구토감도, 토할 때 모세혈관이 다 터져 벌게지는 눈자위도, 제자리를 잃고 입으로 넘어오는 위액도, 가끔씩 빨갛게 올라오는 두드러기나 참을 수 없는 두통도. 몸은 술을 싫어한다. 끔찍하게 싫어한다. 모든 증거가 명백하다... 그럼에도 마신다. 마음이 그러자고 결정했으니까.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살다가 훅 갔다. 어디로? 또다시 병원으로...” (pp.70~71)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강남에서 마셨다. 국기원 아래쪽에 있는 지하의 우드스탁에서 주로 마셨는데 블루스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사장님이었다. 가끔 비틀즈 동호회가 모였다고 하지만 마주치지 않았다. 블러나 오아시스나 스웨이드를 틀어 달라고 하면 인상을 쓰셨다. 잘 틀어주지도 않았다. 국기원 반대편 블록에도 우드스탁이 있었다. 지하 우드와 달리 건물의 3층에 있어 삼층 우드라고 불렀다. 신촌 우드스탁의 주인과 지하우드의 사장은 혈연 관계로 엮여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촌에 가면 놀이하는 사람들에서 주로 마셨다.


  “술집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잊기 위해서 마실 때도 있고 잊어야 할 만큼 마실 때도 있다. 잊다가 잃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알코올이 다량으로 함유된 보통의 술자리는 어쩔 수 없이 휘발성이다. 기실 술자리에 대한 기억은 ‘우리 어제 좋았지’ 정도의 대략적인 느낌만으로 충분할 때가 많다. 취기가 무르익을수록 술자리는 지나친 동어 반복, 통제를 벗어난 감정 표출, 행위예술 수준의 보디랭귀지 등으로 범벅되니까. 그런 자리를 거듭해본 분이라면 망각하겠지만, 망각은 괜히 선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모두의 품위 유지를 위해 적당히 흘려보내는 미덕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술자리, 그런 의식 있는 자리들의 집합소가 술집이다.” (p.108)


  기억 속에서 저요저요, 손을 들고 외치는 술집들이 무수하다. 지하 우드와 삼층 우드를 마지막으로 이제 안식처로 삼는 술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술집이라고 불릴만한 곳에서 술을 마신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토요일 0시부터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어 4인 이상은 모일 수 없고, 술집은 아홉 시면 문을 닫아야 한다. 나는 이제 집에서 혼자 마시는 술에 최적화되었지만, 그많은 술집은 어찌해야 할 것인지... 



아무튼, 술집 / 김혜경 / 제철소 / 177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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