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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가눌 수 없는 착잡함으로 예민하였던 한 시인을 회상하며...

  “... 내 어머니는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으며, 조만간에 그녀가 살았던 한 문장 전체가 차례차례 지워져나갈 것이다. 그 길고 아, 그러나 너무도 너무도 짧고, 지루하고 지겹고 고달프고 안간힘 써야 했던 한 문장이, 쓰일 때보다 몇억 배 빠른 속도로 지워져 마침내 텅 빈 백지만 남으리라. 그뒤엔 이윽고 그 백지마저 없어져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살았던 문장의 문장 없는 마침표 하나, 지구상의 외로운 표적 하나, 그녀의 무덤 하나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그 어떠한 동사도 이제는 모두 과거형을 취하리라.” (p.50, 1983년)


  시인은 1952년생이다. 곧 칠십이 된다. 시인이 1983년에 쓴 글에, 그러니까 그녀가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즈음에 쓴 글에 엄마의 죽음이 등장한다. 1983년이라면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과 두 번째 시집 《즐거운 일기》(1984) 사이에 놓여 있는 해이다. 엄마의 죽음을 마침표로 그녀가 살아낸 한 생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여 말할 수 있는, 과도한 총명함으로 빛이 나는 때였을 것이다.


  “이제 무르익은 가을의 한중간, 지상의 식물들은 그 둥근 완성을 위하여 보이지 않게 땀흘릴 것이고, 이름 없는 무수한 풀과 나무도 머잖아 저마다의 크고 작은 그해의 열매들을 떨굴 것이고, 그리고 한 해의 시간 자체가 커다란 둥근 열매로 익어 마악 떨어지려고 하는 것 같다.” (p.91, 1985년)


  산문집의 3부까지는 1976년에서 1989년까지의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라는 같은 제목으로 1989년에 출간된 바 있다. 시인은 3부 마지막의 글에서 80년대를 자신이 직접 겪은 가위눌림의 경험과 등치시키고, 자신의 시쓰기는 가위눌림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원초적인 비명의 소리였다고 말한다. 시인의 초기 시들에서 느껴지는 처절함은 여태 귓가를 맴돌고 있다. 


  “당대의, 그리고 개인사적인 가위눌림에 대한 나의 시적 저항의 형태는 아마도 내가 얘기한 첫번째 방법이었던 것 같다. 즉 그것이 가위눌림이라는 사실도, 그것의 실체도 명확히 의식하지 못한 채, 아픔을 가해오는 그 억압자에게 온 힘으로 저항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 비명은 도와달라는, 무섭다는, 싫다는 비명이다. 그런데 가위에 눌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아무리 소리치려 해도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얼마만큼의 힘을 쓰며 저항한 뒤에야 비명이 터져나오고, 그것이 자신의 귀에 들리게 되면서 비로소 그 가위눌림으로부터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p.141~142, 1989년)


  산문집의 4부는 1995년에서 2013년까지의 기록이라고 한다. 90년대에 씌어진 네 편의 산문, 그리고 갑자기 사라져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시인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정리한 글이 두 편 실려 있다. 계속해서 시집을 내던 시인은 1991년 《내 무덤 푸르고》를 마지막으로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시인의 시가 일반 대중과 여타의 동료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이 컸으므로 의아했다.


  “내 병의 정식 이름은 정신분열증이다. 거진 다 나았어도 아직은 약을 먹어야 한다. 12년째 정신분열증과 싸우다보니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니다... 내가 했었던 일은 어떤 비밀스러운 다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것이었는데 그 다리는 해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내게 그 구조를 보여주지 않았다... 정신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은 한 5년. 퇴원하여 두세 달 후에 보면 약을 안 먹고 밥도 안 먹고 있는 꼴을 보게 된다. 그럴 때 외숙이 오시면 한번 휘둘러 보고 일견에 상황을 눈치채고 강제로 입원시킨다. 다시 입원하면 두세 달 후엔 좀 볼만한 얼굴이 되어 퇴원해 나온다. 이 짓을 최근 몇 년간 되풀이하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p.173, 2010년)


  산문집에 실린 마지막 두 편의 글에 시인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쉽사리 밝히기 어려운 내용인데, 문학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기도 하다. 아내에게 시인으로부터 배운 것이 언제였는지 물으니, 아마 1995년 즈음일 것이라고 한다. 책에 실린대로라면 시인이 이미 신비주의 공부를 하고 있는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는 수업중 그러한 사실을 짐작할만한 요소는 없었다고 말했다.


  “내 시집 중에 『내 무덤, 푸르고』라는 제목을 단 시집이 있다. 1993년에 출간되었는데, 왜 그런 제목을 달게 되었느냐 하면 내 시가 이젠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아 시를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후에 내가 한 일은 신비주의 공부였는데, 무슨 계획 같은 것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고 무작정 빨려들게 되었다. 신비주의 공부는 불과 5년쯤 지속되었고 그뒤부터 공부의 여파로 환청을 동반한 정신분열증에 걸려 정신과 병동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는 못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p.176, 2013년)


  2016년에 시인이 발표한 《빈 배처럼 텅 비어》를 읽고, 시인을 함몰시킨 구멍의 역할이 무엇인가, 라며 한탄했다. 산문집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딘가 착잡하여, 시인이 1994년에서 1995에 이르는 기간 아이오와 대학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쓴 《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 일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아래의 시인의 말, 을 읽고 난 다음...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p.189, 개정판 시인의 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 난다 / 189쪽 / 2021 (198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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