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5시간전

우사미 린 《최애, 타오르다》

현대 사회 표층의 대중 문화 표층의 아이돌 문화의 표층에...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침대 시트에 주름이 잡히듯 살아만 있어도 주름처럼 여파가 밀려온다.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서 얼굴 살을 끌어올리고, 때가 나오니까 목욕을 하고, 길게 자라니까 손톱과 발톱을 깎는다. 최소한을 해내려고 힘을 짜내도 충분했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최소한에 도달하기 전에 의지와 육체의 연결이 끊어진다.” (pp.13~14)


  《최애, 타오르다》의 주인공인 아카리는 고등학생이고, 정확하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병의 병증은 심각한 정도의 무기력증이라고 유추된다. 아카리는 사소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조차 힘이 겹다. 그런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룹 ’마자마좌‘ 맴버인 마사키이다. 바로 마사키가 주인공인 아카리의 ’최애‘이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서 최애의 모든 행동을 믿고 떠받드는 사람도 있고 옳고 그름을 구분 못 하면 팬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최애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해서 작품에는 흥미 없는 사람, 그런 감정은 없지만 최애에게 댓글을 보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사람, 반대로 작품만 좋아하고 스캔들 따위엔 전혀 관심 없는 사람, 돈 쓰는 데 집중하는 사람, 팬끼리 소통하는 걸 즐기는 사람.

내 방식은 작품도 사람도 통째로 꾸준히 해석하는 것이다. 최애가 보는 세계를 보고 싶었다.” (pp.23~24)


  소설 원제에 등장하는 推し(오시)는 ’밀다, 추천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의 명사형이고, ’자기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아이돌 맴버‘를 의미하는데 (지금은 아이돌 맴버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고 하니) 우리의 용어로 치자면 역자가 선택한 ’최애‘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 아카리는 어린 시절 피터팬 공연을 하는 어린 마사키를 본 적이 있고, 성장하여 마사키를 알아본 순간 그는 아카리의 최애가 되었다.


  “... 나는 누련 벽지와 벽지가 벗겨진 이음매 부근에 걸린 시계를 훔쳐봤다. 한 시간 일하면 사진을 한 장 살 수 있고, 두 시간 일하면 CD를 한 장 살 수 있고, 만 엔을 벌면 티켓 한 장이 된다. 이런 식으로 견뎌온 여파가 몰려온다...” (p.56)


  소설은 그러니까 한 여고생의 팬을 향한 ’덕질‘을 다루고 있다. 아카리는 심한 무기력증 속에서도 아르바이트를 멈추지 않는데 이유는 단 하나 ’최애‘를 소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아카리의 이러한 ’덕질‘은 최애가 팬을 폭행했다는 뉴스가 뜨면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최애의 일거수일투족을 블로그에 올리는 아카리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체 한동안 침잠할 수밖에 없다.


  “내 중퇴를 가장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엄마였다. 염마가 꿈꾸는 이상이 있는데, 지금 엄마를 둘러싼 환경은 그 이상에서 모조리 벗어났다. 둘째 딸의 중퇴뿐만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엄마의 건강이 나빠졌다. 최근 바뀐 담당 의시가 붙임성이 없었다. 직속 부하가 임신해서 업무량이 늘었다. 전기료가 올랐다. 옆집 부부가 심은 식물이 자라서 우리 집으로 넘어왔다. 아빠의 일시 귀국이 회사 사정으로 연기됐다. 새로 산 냄비 손잡이가 떨어졌는데 제조사가 엉망으로 처리해 일주일이 지나도 교환 상품이 도착하지 않았다.” (p.84)


  아이돌 맴버가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팬들이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스로 만드는 ’팬픽‘이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돌 맴버가 아니라 그러한 아이돌 맴버를 사랑하는 팬이다. 그러니까 수많은 팬들 중 한 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현대 사회의 가장 표층에 자리 잡고 있는 대중 문화, 그 중에서도 바로 지금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아이돌 문화를 소설은 다루고 있다. 


  “이젠 쫓아다닐 수 없다. 아이돌이 아니게 된 그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해석할 수는 없다. 최애는 인간이 됐다.

최애는 왜 사람을 때렸을까, 이 질문을 줄곧 회피했다. 회피하면서 계속 그 질문에 끌려다녔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이 저 맨션 밖으로 보일 리 없다.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때 그 노려보는 듯한 눈빛은 리포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최애와 그 여자 이외의 모든 인간을 향했다.” (p.129)


  특이한 것은 바로 그 대중 문화의 팬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에 어떠한 판단의 시도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그저 있는 그대로인 팬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을 뿐이다. 팬인 아카리나 아이돌 맴버인 마사키 양쪽 모두 그저 저런 팬이 저런 아이돌 맴버가 있겠거니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 되었고, 오십만 부가 팔렸고 한다. 의아하다.



우사미 린 / 이소담 역 / 최애, 타오르다 (推し、燃ゆ) / 미디어창비 / 141쪽 / 2021 (2020)

매거진의 이전글 세라 워터스 《티핑 더 벨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