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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7시간전

아사다 지로 《칼에 지다》

무사보다는 인간으로 살며, 군주보다는 가족을 섬기길 원하였던...

  일본의 특정한 시대를 다룬 만화에서 ‘신선조’라는 무사 집단을 빈번하게 발견한 적이 있다. 지금은 ‘신선조’라는 한자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는 단어를 쓰는 대신 ‘신센구미’라는 일본어 표기를 사용하고 있는 듯한데,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는 바로 이 ‘신센구미’라는 집단에 투신하였던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길지 않은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참 묘한 사람이야, 요시무라란 자. 검술이 처음부터 그렇게 뛰어났는데도 그런 걸 자랑하는 기색이 통 없어. 학문이 꽤 높았는데도 그런 걸 코에 걸고 다니지도 않아. 그러면 인격이 훌륭한 자였는가 하면 그게 또 그렇지는 않단 말이야. 거, 어딜가든 그런 인간이 한 사람쯤 꼭 있잖아. 무엇이건 빠지는 거 없이 다 잘하고 가만 따져보면 참 훌륭한 인물인데, 암만해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안 뵈는 그런 사람.” (p.62, 상권)


  ‘신센구미’는 에도 시대 말기인 1863년에 만들어진 무사 조직이다. 당시는 도쿠가와 가문의 장기 집권으로 유지되던 막부 세력과 천황에게 정권을 넘기라는 사쓰마 조슈 번의 세력이 암투를 벌이던 시대였고, ‘신센구미’는 이들 중 막부 세력을 보위하는 집단이었다. 이후 막부 세력은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실권을 잃었고,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왕정복고로 회귀하는 메이지 유신의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소설의 가장 첫 장면은 1868년에 시작되는데, 1868년은 바로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는 해이다. 


  “... 교토 사람들이 불러대던 대로 나는 미부 낭사놈(壬生浪)이올시다. 미부에 주둔소가 있떤 낭사대라 미부 낭사인가. 아니, 그게 아니오. 언제던가, 니시혼간지 담벼락에 끄적거린 낙서에 그리 적혀 있습디다. 미부 늑대(壬生狼). 피에 굶주린 미부 늑대라는 거지요. 우리는 모두 톱니무늬의 신센구미 덧옷을 입고 옛 충신 의사라도 된 양 돌아다녔으나, 교토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이미 의를 지키는 충신 의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더이다. ‘미부 늑대’라는 그 낙서를 보았을 때 나는 똑똑히 깨달았소이다. 우리는 피에 굶주린 늑대 무리였소이다. 그래서 더욱더 무사도, 무사도 외치며 서로를 잡아먹기도 했소이다. 무사도는 우리 늑대들이 울부짖는 소리였소이다.” (p.239, 상권)


  저물어 가는 막부 세력의 전위대인 ‘신센구미’의 일원으로서 살인을 서슴지 않았고,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패잔병 신세가 된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1868년의 음력 정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난부 번의 오사카 지부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비록 자신의 번을 탈주하여 ‘신센구미’에 들어갔지만 육체와 정신의 고향인 모리오카로 회귀한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동무였으며, 이후에는 그가 속한 조직의 조장이기도 했던 오노 지로우에몬은 그에게 할복을 명한다.


  ‘난부 모리오카는 일본에서 제일로 아름다운 고장이고만요. 서쪽으로는 이와테 산이 우뚝 솟고 남쪽으로는 하야치네 봉우리, 북으로는 히메가미 산. 읍내를 흐르는 나카쓰 강은 기타카미 강을 만나 넘칠 듯이 흐르지요. 봄에는 지천으로 꽃이 피고 여름에는 초록, 가을에는 단풍, 겨울이 되면 햇솜 같은 눈에 푹 안기는 고장이올시다.‘ (p.91, 하권)


  소설은 두 개의 시간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그 중 하나는 할복의 명령을 받고 고뇌하는 요시무라를 보여주는 1868년이다. 또 다른 시간 축은 그로부터 오십여 년이 지난 시점인데, 여기에서 익명의 기자는 이제는 노인이 된 ’신센구미‘의 조직원들을 만난다. 그 기자는 특히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해 하고, 이 시간 축에서 채집되는 이야기를 통해 요시무라의 전생애가 차곡차곡 구축된다.


  “대답해주십시오, 아버님. 저는 탈번의 시시비비를 알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말하마. 아비에게는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고 너에게는 있었지. 단지 그뿐이야. 탈번은 무사의 죄겠으나 제 자식을 굶겨 죽이는 건 인간으로서의 죄가 아니냐. 아비는 다행히 너도 네 어미도 죽이지 않고 무사히 넘어왔다만, 아차 죽이겠구나 근심했던 겨울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비에게는 탈번을 할 용기도 힘도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는 그것이 있었어. 인간 아닌 사무라이가 되느니 수치스런 무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 너는 옳았다. 참으로 잘했느니라.” (p.308, 하권)


  시대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에는 ’신센구미(신선조)‘를 비롯한 무사, 도쿠가와 가문으로 대표되는 막부, 메이지 유신이니 사무라이니 유신 지사니 하는 얼핏 들어 알고 있는 다양한 집단들이 등장한다. 위키백과의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소설 속의 시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고 그 정도의 이해만 있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무사도, 라는 것에는 문외한이나, 군주가 아닌 가족을 섬기는 것으로, 사무라이보다는 인간으로 살기를 원하였던 어느 하급 무사가 추구한 ’의‘가 무엇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사다 지로 / 양윤옥 역 / 칼에 지다 (壬生義士傳) / 북하우스 / 전2권 상권 462쪽, 하권 455쪽 / 20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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