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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철도원 삼대》

낙관과 허망 모두가 현실이고 역사라는 심정으로...

by 우주에부는바람

대학에 들어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었다. 그 책을 통해 해방 공간의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그만큼 두꺼운 책이었는데, 지금도 그 중 (모두 6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 중 1권, 3권, 5권) 세 권을 가지고 있다. 1권은 끝까지 읽은 것을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만 나머지 두 권은 모두 읽었는지 자신이 없다. 여하튼 (얄팍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해방 공간을 다루는 소설을 읽을 때 여태 적잖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진오가 한달 전 깊은 밤중에 기어오른 이곳은 발전소 공장 건물의 끝 쪽에 자리 잡은 굴뚝 위다. 높이는 사십오 미터, 아파트 십육층과 엇비슷할 것이다. 요즘 아파트 건물이 보통 이삼십층 높이라서 그에 익숙했던 탓인지 이 굴뚝 위가 별로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눈앞이 아찔할 정도는 더욱 아니었다. 그렇기는 해도 공간이 좁고 사방이 휑하니 열려 있어서 처음에는 난간 너머 허공으로 걸어나갈 뻔했다. 굴뚝의 지름은 육 미터이고 주위를 두른 둥근 테라스의 폭은 일 미터, 그리고 원둘레를 걸으면 이십보쯤 될 것이다. 아니, 거기서 그가 잠자는 공간을 빼야 하니까 열여섯걸음쯤 될 게다. 이미 다른 도시의 크레인에 올라갔던 이들이 있어서 생존하는 방법은 학습이 되어 있던 터였다. 이진오도 잘 아는 용접공 영숙이 누나는 농성할 때 크레인의 운전실을 숙소로 삼았고 철탑 기둥들 사이에다 토마토며 화초를 키우기도 했다. 그녀는 밤마다 그 거대한 조선소의 철탑이 나무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아마도 거대한 쇳덩어리에 올라앉은, 작고 여린 살아 있는 몸을 쇠의 부속품처럼 물질적으로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건너편 다른 크레인들이 모두 활엽수로 변하고 바다 이곳저곳에서 거대한 나무들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광경을 바라보곤 했다. 진오는 그녀처럼 이 굴뚝을 무엇인가 근사한 조형물로 바꾸지는 않았다.” (pp.8~9)


《철도원 삼대》는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의 삼대에 걸쳐 철도라는 근대의 산업에 한 발을 걸치고 살아낸 민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삼대에서 끝나지 않고 이들의 후손인 이진오로 이어진다. 그래서 소설은 투쟁의 일환으로 굴뚝에 올라간 이진오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현재의 이진오의 투쟁의 장소에서 시작되고, 그 장소에서 이진오가 소환한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로 이어진다.


“노동투쟁은 원래가 이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 한두달 새 내려올 생각 아예 마라. 쩌어 예전부터 지금까정 죽은 사람이 숱하게 쌨다... 그녀가 하는 말은 큰할아버지 이백만과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이 늘 입에달고 쓰던 말이었다...” (pp.110~111)


이진오는 지상과 완전히 분리된 그곳, 자신을 유지시키는 물통에 이름을 붙여 놓고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소환한다. 그렇게 소환된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노동을 하고, 스스로 깨우쳐 노동 운동에 투신하고,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기관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공산당을 통한 제국주의 반대 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열다섯살에 가출해 / 신문 배달, 봉제 보조, 시내버스 안내양을 거쳐 / 태산중공업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 된 사람, / 스물여섯살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다녀오고 / 감옥 두 번 살고, 오년 수배생활을 하다보니 / 머리 희끗한 쉰셋의 나이가 되어 있더라는 사람. / 한국 근현대사 노동자·민중의 수난사를 / 자신의 온몸에 빈틈없이 새겨넣은 사람 / 절망의 크레인 위에서도 / 이 평지의 누구보다 밝고 활달하고 / 유머러스했던 사람.” (pp.406~407)


소설 속 여인이 말하는 바, ‘한국은 하도 우여곡절이 많아서 여기 일년이 다른 나라의 십년이라고 하지 않더냐.’, 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숨 가쁘게 흘러가고, 민중은 그 와중의 고초를 피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민족을 배신하며 제국주의에 부역하고, 또 다른 이들은 제 목숨을 담보로 하여 위험천만한 행보를 이어간다. 철도원 삼대를 비롯하여 그들의 역할에 뒤지지 않는 여인들의 궤적이 소설 안에서 뚜렷하다.


“일본국천황과 정부와 대본영을 대표하여 서명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 휘하의 전건군은 본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함.. 본인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의 권한을 가지고 이로부터 조선 38도 이남의 지역과 이 지역의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설립함. 따라서 점령에 관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포고함.” (p.523)


어려운 시기는 지나갔고, 목숨과 맞바꾼 독립이 찾아왔지만, 곧이어 길고 긴 독재의 시기를 거쳐야 했다. 절체절명의 시간동안 산업화를 이루어냈고, 민주화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현재, 철도원 삼대의 아들이자 손자인 이진오는 굴뚝에 올라 삼백일이 넘는 시간을 견뎌낸다. 역사를 낙관하지만 동시에 허망한 디테일을 물리치기 힘들다. 낙관과 허망 모두가 현실이고 역사이다.



황석영 / 철도원 삼대 / 창비 / 619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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