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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강지혜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제주살이의 성공(과 실패)을 따라 나도 언젠가는...

  젊어 함께 책을 읽고 술을 마시고 길을 걷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였던 누이가 제주에 살고 있다. 그 집의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개에게 참변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경포에서 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은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하루가 지나 나무 데크에서 기어 나왔다는 소식을 하루가 지나 들었다. 아내와 함께 크게 안도하였고 곧바로 키튼 사료를 보냈다. 


  “제주의 밤은 ’푸른 밤‘이 아니라 완전한 어둠이다. 특히 신창리의 밤에는 교차로 부근의 가로등 말고 거의 모든 불빛이 사라진다. 해가 지면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해가 지면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바람이 심한 날은 가까운 바다에서 들리는 풍차 돌아가는 소리와 어둠만이 가득했다... 밤의 민낯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어둡고 어두운 것이구나. 깊은 어둠과 마주하고 있으니 정말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곳과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농업 지역인 제주 한경면은 주거지보다 농작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더 크기 때문에 모든 환경이 그들을 위해 움직인다. 농작물은 특히 빛에 매우 예민해서 해가 지면 어둠의 품에서 편히 쉬어야 한다. 진하고 분명한 어둠에도 놀랐지만 가장 놀라운 건 밤이 굉장히 적막하다는 것이었다... 밤은 온전한 휴식의 시간, 야행성 생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빛 공해 없이, 어둠과 빛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차례대로 땅을 밟는, 진짜 낮과 진짜 밤. 거기에서 만난 제주도의 검은 밤.” (pp.50~51)


  이즈음의 내게 제주도는 누이와 네 마리 새끼 고양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고양이 사진이 뜸하면 마음으로 걱정하고, 고양이 사진이 올라오면 몸조차 기뻐한다. 오늘 올라온 사진의 고양이 궁둥짝이 홀쭉하여 걱정을 보태는 말을 남겼고, 누이는 길쭉해지는 중인 것 같다는 답을 건성건성 달아서 내 걱정을 은근히 덜어 주었다. 다시 사진을 눈여겨보며 역시 길쭉해지는 중인 거야, 혼잣말을 했다.


  “서울 살 때를 떠올려 보면 내 옆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도시, 특히 서울은 인구밀집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구밀집도가 낮은 지역에는 놀라운 장점이 있었다. 늘 사람으로 가득 차 있던 옆자리에 다른 것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바로 시간이다. 나는 제주에 와서 비로소 온전히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p.67)


  책은 서울의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날아가 그곳에서 정착을 시도하고 있는 시인의 일상을 담고 있다. 제주도에서의 한 달 살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제주도에 자리를 잡은 유명 연예인의 집을 민박으로 꾸며 손님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지켜보기도 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내와의 이른 여름 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냈을 수도 있다.


  “시는 주로 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인상 깊었던 정황, 충격받았던 장면을 그림을 그리듯이 사진을 찍듯이 써 내려고 한다. 마주하기 어려운 순간이라도 최대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장면을 완성한다...” (p.111)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던 것도 십여 년 전이다.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병을 얻고 나서 얼마 지난 뒤였다. 주변의 권고와 아내의 으름장에 제주도에서 며칠을 보냈다. 일종의 가료 같은 여행이어서 제주도의 누이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를 눈으로 확인하였고, 컴컴한 제주의 관통 도로를 밤에 달렸다. 오랜만에 맛보는 깊은 어둠이었고, 자동차 안에서 느끼는 작은 속도에도 공포스러웠다. 


  “분명한 건, 분명한 것. 확신에 찰 수 있는 것. 나는 내가 시인이라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나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여자라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나는 내가 큰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나는 낮에는 돌봄 노동과 숙소 관리를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일상을 보낸다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나는 내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확신을 느낀다. 내게 확신을 주는 것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면 확신을 느끼는 일에는 기왕 하는 거 몰두하기로 한다. 그러면 제주나 서울, 그 어디에서든 다 같은 오늘일 테니까. 그 ’오늘‘들이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겠지.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 후회든 기쁨이든, 잘 부탁한다. 내일의 나여! // 라고 기록하며, 기쁨을 느끼는 게 바로 나다...” (p.217) 


  책을 읽으며 책의 내부에서 고군분투하는 작가를 조용히 응원했다. 과감한 결단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질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상들의 성공 사례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심정이기도 하다. 거처를 옮기는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일 터이니 더욱 그런 마음이 된다. 그 성공들을 따라 언젠가 나도 짧게나마 제주살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제주의 누이가 건강하면 좋겠다.



강지혜 /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 민음사 / 221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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