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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문보영 《일기시대》

저절로 진심이 되어 버리는 일기에 진심을 더하여...

  “... 일기를 쓸 때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어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타인을 만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일기에는 늘 타인의 흔적이 묻어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하다. 책에 적은 것처럼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p.12)


  어떤 일기의 말미에는 작가의 취침 시간이 적혀 있다. 대부분 새벽 여섯 시를 막 넘은 시각이다. 오늘 나는 바로 그 시간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거의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아내가 아직 자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어제 산과 천변을 넘나들며 4만 보를 넘게 걸었다. 다시 자려고 옆자리의 들녘이를 연거푸 쓰다듬었지만 실패했다. 나는 어제 새벽 두시 삼십분까지 읽었던 문보영의 《일기시대》를 마저 읽었다. 


  “... 시험공부는 친구랑 같이 할 수 있지만 일기는 친구 옆에서 쓰기 어렵다. 일기는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가장 치열하게 듣는 행위인데, 내가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엄청난 청력이 필요하다. 고요한 공간에서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아마 친구와 떨어져 앉아도 같은 공간에서는 일기를 쓰기 어려울 것 같다. 나에게 무심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공간에서 혹은 내 방에서만 일기를 쓸 수 있다. 나는 일기를 쓰면서 발생한다.” (p.149)


  아침 여덟시 즈음에 책을 모두 읽었고 왠지 마음이 느슨해져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홉시 삼십분에 다시 깼다. 아내는 그 사이 일어났는지 옆에 없었다. 재차 잠을 청할까 들녘이를 더듬었는데 들녘이도 없었다. 지금 다시 자봐야, 잠도 아니고 아침잠도 아니고 낮잠도 아닌 어중간한 잠이 될 터였다. 방밖으로 나오자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내가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서울 성곽길 중에서 인왕산 구간을 걷자고 했다. 


  “... 공부를 잘하는 사람,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를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는 그가 매력은 없을 거라는, 혹은 세상을 모를 거라는 혐의를 씌우곤 한다. 걘 공부밖에 모르잖아. 걘 성공밖에 모르잖아. 걘 돈 버는 것밖엔 모르잖아. 걘······ 등등. 그러나 이런 말은 잘 없다. 걘 여행밖에 모르잖아. 걘 산책밖에 모르잖아. 걘 캠핑밖에 모르잖아. 왜냐하면, 누가 너무 열심히 사면 초조해지지만, 누가 너무 논다고 초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p.41)


  아내와 나는 요즘 주말마다 이 산 저 산의 둘레길을 걷고 있다. 새로운 취미 생활인 셈이다. 은평 둘레길과 북한산 둘레길과 서울 성곽길을 두서없이 걷고 있다. 무언가에 쫓겨 시작한 일이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자연스럽게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게임처럼 한 코스 한 코스 클리어하는 재미가 있다. 아내와 나는 처음 맞이하는 공간에서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되거나, 서로가 알고 있는 바를 공유하곤 한다. 우리는 이를 꼬마 상식이라 일컬으며 즐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가끔 쑥스럽다. 시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던 시절이. 이제는 누군가 내게 목숨 걸고 시를 쓰라고 하거나, 시에 인생을 바치라고 하면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은 얼마나 촌스러운 말이 되어 버렸는가.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인연이, 그리고 사랑하는 게 시밖에 없던 시간들은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절 내가 촌스럽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pp.96~97)


  돈의문 터에서 시작하여 인왕산 정상을 거쳐 창의(자하)문으로 내려오는 코스에는 한 시간 삼십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별다른 굴곡 없이 한 번에 올라가고 한 번에 내려오는 코스여서 밋밋하였다. 가끔 광화문 복판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 자락의 그늘을 두고 아내가 산그늘이라고 하여서, 그렇지 않고 저기 큰 구름이 만든 그림자일 것이라고 수정해주었다. 윤동주 문학관은 코로나 때문에 휴관 중이었고, 부암동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시간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 이것은 소설인가? 이것은 일기인가? 이것은 비평인가? 이것은 시인가? 모두 아닐 때 그것이 새로운 시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한 장면 같지도, 일기 같지도, 비평 같지도, 시 같지도 않은 시. 그것들이 동시에 아닌 시가 좋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시 파일이 두 개가 되었다. ’누가 봐도 시인 시‘를 저장하는 파일과 ’누가 봐도 아직 시가 아닌 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후자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시가 되는 것이다.” (p.176)


  따로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 일기의 뉘앙스가 스며들곤 한다. 문보영이라는 작가의 일기가 무척 재미있다. 재기가 넘친다. 작가의 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말씹러‘라는 이름의 인형과 절대 들어온 곳으로 나가는 법이 없는 ’뇌이쉬르마른‘이라는 존재가 흥미롭다. 저절로 진심이 되어버리는 일기라는 것만큼이나 시에 대해서도 진심인 것 같아 작가의 시도 읽고 싶어 졌다. (찾아보니 최근에 소설집도 냈다.)



문보영 / 일기시대 / 민음사 / 280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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