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가까워 보이는 그 작은 폭력의 서클을 향한...
초등학교를 네 군데, 중학교를 네 군데 다녔다. 갈마, 서대전, 문화, 송우, 여기까지가 초등학교의 이름이고, 동신(중학교를 다닌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름이 가물가물 하다), 태성, 경희, 신천, 여기까지가 중학교 이름이다. 전학을 많이 다녔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왕따라고 불릴 만한 위치에 놓인 적은 없다. 워낙 전학을 많이 다니다보니 누군가를 몰아세우는 위치에 서본 적도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개학식 날 아침, 아유무는 알람이 울리기 한 시간 전에 눈이 떠졌다. 다시 머리를 베개 위에 올려보지만 잠이 다 깨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외투를 걸치고 정원을 산책했다. 늘 갖고 싶던 2층 방은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잔디가 깔린 마당은 없었다. 대신에 서쪽 통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그 끝에는 밭 터가 펼쳐져 있었다...” (p.14)
소설 속의 아유무는 아버지의 이동을 따라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번이 세 번째 중학교이고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다. 먼 친척의 집을 빌려서 들어가게 되었고, 근처에 밭이 펼쳐진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학교도 전형적인 시골 학교로 이번 중학교 3학년으로 학교는 다른 학교에 통폐합될 예정이다. 한 반은 열두 명인데 그중 남자가 여섯 명이고, 이들은 한데 어울려 다닌다.
“연꽃과 참새가 있는 패와 버들 피가 나오면, 높은 족보가 된다고 한다. 결국, 그 판에 더 높은 족보가 나오지 않아 아유무가 승자가 되었다. 아키라가 아쉬워하면서도 아유무에게 칼을 건넨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그 칼은 아까보다도 무게가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p.28)
아키라는 남자 패거리의 리더를 맡고 있다. 미노루는 반대로 다른 패거리들로부터 당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들은 어떤 일의 술래를 정하거나 할 때 화투패를 이용하곤 하는데 거의 언제나 미노루가 뽑힌다. 아유무는 그것이 화투패를 돌리는 아키라의 농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춘다. 어느 순간 자신이 뽑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뽑힐까 두려움의 자리에 서게도 된다.
“아유무는 농기구를 구경하다가 어떤 문구를 발견했다. 선반 위에 가로로 놓인 몸통이 굵은 나무망치 손잡이에 ‘풍요로운 침묵’이라는 글이 손으로 새겨져 있었다. 농기구의 주인이 새긴 거라면, 그것은 아유무가 눈으로 본, 이 집에 살던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일한 말이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풍요로운 말이라고 했다면 이해가 되어도, 침묵은 말이 없다는 뜻인데 말이 없는 것이 풍요롭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엄마에게 묻자, 그 농기구 목메라고 하고 짚을 칠 때 사용한다고 한다. 손으로 새긴 글자를 보고는 엄마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pp.71~72)
결국 소설은 이 어리고 작은 집단에서 펼쳐지던 폭력적인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이어지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폭력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부조리한 폭력의 부당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주최자와 방관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이제 오봉이 끝났으니, 접시의 불꽃은 배웅불(送り火, 오봉에 저승으로 돌아가는 조상의 영혼을 배웅하는 의미로 피우는 불-옮긴이)일 것이다. 배웅불은 보통 저녁때 태우는데, 한참 전부터 생각했지만 그 할머니는 조금 치매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겨릅대는 불이 타서 줄어들어 숯이 되고, 흔들리는 불꽃에서 흔들리는 연기가 일고, 주위에도 향 같은 냄새가 떠돈다. 그 대낮의 배웅불을 곁눈으로 보면서, 삼나무 숲 비탈길을 올라갔다.” (p.128)
<우상의 눈물>이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같은 소설은 있었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서 지금의 왕따와 같은 상황을 떠올려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라는 의구심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 본성에 가까워 보이는 그 작은 폭력의 서클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원 안에 서본 적 없다고, 내가 그 원 위에 서 있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한동안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지만 이미 시들시들해져가는 중이다.
다카하시 히로키 / 손정임 역 / 배웅불 (送り火) / 해냄 / 163쪽 / 2019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