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버린 곳과 자신이 찾은 곳, 두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빈 옷장》은 아니 에르노의 첫 번째 소설이다. 1940년생인 작가가 1974년에 출간한 책이니 이르게 쓰기 시작한 셈은 아니다. 소설의 실제적인 배경은 내가 자란 시골에서의 생활이지만 소설은 불법적인 낙태 시술을 받고 돌아온 대학생인 나로 시작된다. 태어나 자란 어린 시절의 나를 뚫고 틈틈이 낙태 시술을 받은 현재의 내가 소환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가면 나의 그러한 고통의 근원이 등장하는데, 소설 전체가 하나의 아이러니가 되고 만다.
“...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외관이 초라한 우리 집, 단순하고 착하고 세련되지 못한 나의 아버지를 소설가가 가난한 사람, 하류의 사람을 말하듯이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책을 읽고 발췌한 것이나 상상한 것, 카탈로그 등의 도움을 받아 지어내야 했다. 고급스러운 취향화 시적인 것, 조화로운 것 등을 생각해내려 했다. 밀밭, 센 강의 배, 알프스의 초가집, 반짝이는 피아노나 치과 의사 삼촌 같은 것을······” (p.115)
아니 에르노는 철저한 자전적 소설 쓰기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 사립 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자신의 생활 환경이 동급생들의 그것과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그리고 가족 등에 대한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아들고 망설인다. 그녀는 사실대로 쓸 수가 없다. 그녀가 사실대로 쓴다면 친구들은 그녀에 대해 알게 될 것이고, 그녀는 그것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 아니 에르노가 철저히 자전적인 소설 쓰기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는 것은 당시에 그러하지 못함에 대한 반작용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다른 여자애들은 등을 돌리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웃음, 행복, 갑자기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 알겠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믿고 싶지 않은데. 왜 나는 저 아이들과 달라야 하는가, 배에 단단한 돌덩이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눈물 때문에 눈이 따갑다.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이것은 모욕이다. 학교에서 나는 모욕을 배웠고, 모욕을 느꼈다. 분명 내가 느끼지 못하고, 주의하지 못하고 놓쳤던 것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과 다르다는 것을, 선생님이 내 부모와 다르게 말한다는 것을 이내 알아버렸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있었다...” (p.66)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 식료품점의 세계를 향하여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다. 일층에 있는 식료품점은 없는 것 천지이고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물건을 찾아내는 일이 힘겨울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동네 사람들은 외상을 하기 일쑤이고 그곳의 한 켠에서는 술도 판다. 식료품점과 그녀의 공간은 아예 연결되어 있다. 술 마시는 그들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이층에 그녀와 부모님의 침실이 등장한다. 그녀는 요강을 사용했다.
”...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세계에 있지 않으며, 그들과 어떤 공통점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일곱, 여덟 살까지, 블라우스를 입고 장을 보러 와서 치즈가 잘 숙성됐는지 보려고 까망베르 안에 다섯 개의 손가락을 집어넣는 그들과 닮아 있었다. 말투가 상스러운 사람들, 변태들, 쭈그리고 앉아 그들의 낯짝 위에 오줌을 갈길 것이다······ 여름, 셔터를 내리면, 연기, 씹는 담배, 물러진 토마토 사이로 나오는 니니즈 르쉬르······ 아기 고양이처럼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행복, 모두 가져야 할 것들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가 감탄했던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 역겹다 할지라도. 세상은 그곳에 있었다. 허기와 갈증 그리고 만지고 싶고 찢고 싶은 욕망의 수천 개의 조각들로, 질기고 수다스러운 끈으로 엮인 채, 나, 드니즈 르쉬르, 나는······...“ (pp.50~51)
하지만 식료품점을 하는 작가의 부모는 자신들을 노동자와 분리해내고 싶어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는 그들에게 훈계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외상을 줄지 말지를 결정했다. 그들은 아니 에르노가 공부를 하기를 바랬고 사립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일등을 차지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식료품점을 탈출하고 싶었고, 무엇으로 그 탈출이 가능한지를 알았으며, 결국 그렇게 했다. 대학에 진학했다.
“... 영국에 가서 야영한다고? 너 미친 거 아니니?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고! 늘 그렇듯이 두려움이다. 나를 머리는 공부로, 몸은 그들의 감시 아래 두는 것, 그것이 그들의 꿈이다!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께 슬쩍 말했던 것처럼 그들의 환경을 고려하면, 그들은 이상적인 부모다.” (pp.181~182)
이렇게 소설 한 편을 통틀어 돌고 돌아 그녀는 다시 불법 낙태 시술을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현재로 돌아온다. 그녀에게 대학은 신세계였다. 그녀를 인심 시킨 남자는 철저히 부르조아 계급에 속한 이였다. 사실 그녀는 그러한 상황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자신이 떠나오고자 했던 곳과 자신이 소속되고자 했던 곳, 두 세계를 의심 없이 사실대로 바라보기 위해 그녀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털어 놓을 수밖에...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 신유진 역 / 빈 옷장 (Les Armoires Vides) / 1984BOOKS / 222쪽 / 20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