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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4. 2024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사진의 용도》

죽음과 성의 한복판을 살짝 비껴간, 바로 그곳을 향한 초점...

  “공동묘지 분양권을 사려고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나이를 물었다. 70세 이전에는 불가능했다. 그녀는 내가 왜 묘지를 사려는지 알고 싶어 했고, 나는 ‘미래를 준비하려고요’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었다. 어찌 됐든 그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었다.” (pp.26~27)


  책 안에서 아니 에르노는 유방암으로 투병을 하는 중이다. 그녀는 2002년의 어느 날 퀴리 병원에 들어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병을 치료하는 동안 머리카락을 비롯한 온 몸의 털이 모두 빠져나갔다. 오른쪽 가슴이 왼쪽 가슴보다 더 커다래졌다. 종양 탓이었다. 수술을 통해 종양과 림프절을 제거했고 약의 주입을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몸에 카테테르(카테터)를 삽입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모파상의 단편 소설 속 하녀는 주인에게 농부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자백하기 위해 이렇게 단순히 말한다. ‘우리는 구두를 섞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구두(soulier)’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언젠가 M과 나는 더 이상 서로의 구두를 섞지 않게 될 것이다.” (pp.48~49)


  아니 에르노는 그 기간 동안, 그러니까 암을 알게 된 이후 투병을 하는 동안 한 남자와 본격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말하자면 그에게 자신의 알몸을 서슴없이 보이고 상대방의 몸도 보아야 하는 사이이다. 그는 아니 에르노의 체모가 없는 몸을 ‘나의 인어 아내’라고 부른다. 가슴에 삽입되어 있는 카테터로 인해 솟아 있는 것에게는 ‘여분의 뼈’라는 이름을 붙인다.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없이 지내기 힘든 것은 단지 성적인 필요성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떤 깨달음을 위해 M을 만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p.71)


  책은 아니 에르노와 마크 마리가 함께 쓴 것이다. 그는 저널리스트로 아니 에르노보다 스물두 살 연하이다. 연인이 된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살고 함께 여행을 간다. 책에 실린 글은 따로 따로 쓴다.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 M, 마크 마리의 글에서 A로 상대방이 지칭된다.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서로가 서로의 글을 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상대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으로 서로를 의식한다.


  “사진에는 항상 시선을 붙잡는 디테일이 있다. 다른 것들보다 마음을 더 동요시키는 디테일, 예를 들면 흰색 상표, 타일 위에 구불거리는 스타킹, 둥글게 말은 양말, 짝을 잃은 양말 한 짝, 쇼윈도에 진열한 것처럼 마룻바닥에 컵이 납작하게 놓인 브래지어. 여기서는 창문 앞에 있는 흰색 뮬이 그렇다. 이미 여름 더위는 시작됐다...” (p.112)


  책의 제목이 《사진의 용도》인 것은 실려 있는 글이 바로 사진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두 사람이 섹스를 나누기 전의 상태에서 멈춰진 옷가지들과 신발 그리고 그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정물에 다름 아니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그것들을 인화한 후 두 사람은 꼭 함께 사진들을 보았다. 아니 에르노는 그렇게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쓰기로 했고, 연인인 마크 마리가 동의했고 함께 했다. 


  “당신은 곧 죽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했잖아. 이제 정말로 그렇게 됐네, 자기야... 작년에 M이 한 말이다. 그는 2년 전, 내가 책에 쓴 문장을 언급했다. 내가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문장을 썼을 때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진실이 죽음의 여하에 따라 찾아온다고 믿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그러니 나의 태도는 틀렸던 것이다.” (pp.125~126)


  그렇게 《사진의 용도》가 만들어졌다. 책에는 14장의 사진이 있고 각각의 사진에 딸린 (두 사람이 각각 쓴) 두 개의 글이 있다. 아니 에르노는 아주 디테일하게 사진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래서 사진과 텍스트를 비교하며 보게 되는데 자주 난감해진다. 아니 에르노가 자꾸 선명하게 사진 속의 사물들에 색칠을 하는데, 책에 실린 흑백의 사진을 제아무리 들여다보아야 색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크 마리의 글은 매번 그렇게 시작되지는 않는다.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마크 마리 Marc Marie / 신유진 역 / 사진의 용도 (L’usage De La Photo) / 1984BOOKS / 179쪽 / 20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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