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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4. 2024

아니 에르노 미셸 포르트, 《진정한 장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쓰는 인간의 말년이 향하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글들을 연달아 읽었다. 한동안 읽지 않아도 좋을 만큼이다. 소설이라고 이름붙이지만 고스란히 자신을 내보이는 글들이었다. 아예 소설로 구분하기 힘든 글도 있었지만 (그러니까 《사진의 용도》와 같은) 그마저도 절대 소설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는 암투병 중인, 그 와중에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 자신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고, 그것은 그녀의 매우 일반적인 소설 전개 방식이기 때문이다. 


  “... 글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찾는 것은 별로 흥미롭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것이죠. 글은 자신 앞에 있어요. 항상 앞에 있죠. 제가 썼던 책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저에게는 쉽지 않아요. 저는 항상 제 앞에 있는 것들만 생각하니까요.” (p.32)


  그렇지만 《진정한 장소》만큼은 어쩔 수 없이 소설로부터 분리해낼 수밖에 없다. 인터뷰어인 미셸 포르트가 있고 인터뷰이인 아니 에르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질문은 아주 짧고 대답은 매우 길다. 인터뷰어는 최소한으로만 개입한다. 질문은 한 문장이거나 길어도 두 문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답은 짧으면 한두 페이지, 어느 때는 하나의 챕터가 하나의 대답으로 꾸며져 있기도 하다.


  “... 저는 외동딸로서 어머니의 상태를,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내밀한 일처럼 겪었어요. 어머니와 저는 진정한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것은 한없이 무거웠죠. 동시에 저에 대한 어머니의 애증의 태도를 분명히 알게 됐고 그래서 저는 우리가 사랑과 미움에 있어서 동등했다고 생각해요.” (pp.46~47)


  쓰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이 언제, 어디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으로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채워져 있다. 여러 소설에서 몇 번에 걸쳐 보여준 바 있는 어린 시절의 가게와 부모들이 등장하고, 현재 글을 쓰며 머물고 있는 공간이 슬쩍 비춰지기도 한다. 한 번의 일갈로 이해되지 않는, ‘글은 하나의 장소’라는 그러니까 ‘진정한 장소’라는 작가의 말은 옆에 두고 좀더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 글은 하나의 장소이죠. 비물질적인 장소. 제가 상상의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기억과 현실의 글쓰기 역시 하나의 방식이에요. 다른 곳에 있는 거죠. 항상 글쓰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침수하는 장면이에요. 내가 아닌, 그러나 나를 거친 현실 속으로의 침수, 저의 경험은 통과의 경험 그리고 사회 세계의 분리의 경험이죠... 사회 세계의 분리와 저라는 존재를 통과한 분리 사이에는 상응하는 것이 있고 우연의 형태가 있어서, 저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제 인생에 흥미를 갖는 일이 아닌, 이 분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 되게 만들어요.” (pp.71~72)


  번역된 거개의 작품들을 읽은 상태여서 소설 제목이 등장할 때 잠시 마음이 움찔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는 거야, 라는 의문이 종종 고개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기 자신은 그렇다고 해도 그 실토의 오브제라는 자리에 부모나 연인이 위치하는 데도 이렇게까지 성실하고 냉정한 고백이 가능한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등장했던 부러움 내지는 불안감이라는 감정이 떠오른다. 


  “...부끄러움과 남자의 자리, 단순한 열정에서 제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경험의 특수성이 아닌, 그것의 형언할 수 없는 보편성이었어요... 물론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을 하며 살아요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서 그 체험들을 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 체험들이 당신의 것에서만 머무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 돼요.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죠. 그래요. 그것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다르게 살게 하며, 또한 행복하게 해주죠...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저는 제 책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몰라요. 그러나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죠.” (pp.124~125)


  여하튼 아니 에르노는 해냈다. 물러서지 않았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현재까지도 고수하고 있다.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자신의 ‘경험의 특수성’이 결국은 ‘형언할 수 없는 보편성’으로 이어지리라 자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지된 자신감이 스스로를 향한 믿음이 되었고 이제 작가는 행복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쓰는 인간의 말년을 향하고 있다.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미셸 포르트 Michelle Porte / 신유진 역 / 진정한 장소 (Le Vrai Lieu) / 1984BOOKS / 133쪽 / 20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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