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배하는 양식의 서로 다름에 굴하지 않고 들여다본...
“사망을 확인해 준 당직 의사에 대한 기억은 없다. 몇 시간 만에 아버지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오후가 끝날 무렵 방에 혼자 남겨졌다. 차양을 통과한 햇살이 장판 위로 슬며시 들어왔다. 그것은 더 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퀭한 얼굴에 코만 보였다. 흐물흐물한 파란색 양복에 감싸인 그가 마치 누워 있는 한 마리의 새처럼 보였다.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남자의 얼굴은 그가 숨을 거두자마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다시 그 얼굴조차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p.13)
나는 아버지가 사망하기 두 달 전쯤 중등 교원 자격 실기 시험을 치렀고 합격했다. 나는 그 시험의 과정에서 ‘분노와 일종의 수치심’을 느꼈지만, 그날 저녁 부모님에게 이제 정식 교사가 됐음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아버지는 67세였고, 엄마와 함께 지방의 조용한 동네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일어난 일이었고 엄마는 장례식 하루를 제외하고는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나는 곧바로 그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쯤에 이르자 거부감이 찾아왔다.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 혹은 《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제스처, 취향, 아버지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나 역시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글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다. 내가 부모님께 중요한 소식을 말하기 위해 썼던 글과 같은 글이.” (pp.19~20)
아버지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려다가 그만둔 작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자전적 소설을 써왔던 (초기 3부작이라고 불리우는 《빈 장롱》, 《그들이 말한 것 혹은 말하지 않은 것》, 《얼어붙은 여자》)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쓴 《남자의 자리》(원제는 La Place 그러니까 그냥 ‘자리’이다)부터는 자신의 출판물에서 아예 ‘소설’이라는 명칭을 떼어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 내며 말하는 법 말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몰랐다. 예의 바른 말투는 낯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습관이 너무 몸에 배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올바르게 말하려고 애쓰다가, 내가 자갈 더미에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것을 막기 위해 거친 톤과 그의 노르망디 억양 그리고 욕설을 되찾았으며 좋은 인상을 주길 원했던 시도를 망쳐버렸다. 그는 우아하게 나를 혼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나 또한 따귀를 때리겠다는 협박을 점잖은 말로 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pp.63~64)
작가는 되도록 가감 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다루고 있다. 동시에 아버지와 함께 한 어머니 또한 다룬다. 그들의 뿌리가 되었던 이들을 거론하고 그들이 삶을 향하여 가지고 있던 태도나 삶에서 거부할 수 없었던 생활 방식 등을 이야기한다. 종종 반역의 문장들이 눈에 뜨이지만 바로 거기를 뿌리로 삼고 있는 작가의 발화이므로 타자가 나무랄 바는 아니다. 무지렁이 부모 밑에서 자란 딸이 지식인이 되어 뱉는 일종의 자학 개그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 나는 주방에 앉았고, 그들은 서 있었다. 어머니는 계단 옆에, 아버지는 카페 홀을 향해 열린 문틈에. 그 시간에는 태양이 테이블과 계산대의 유리잔들을 비췄고, 때때로 쏟아지는 빛 속에 손님 하나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다. 멀리서, 나는 내 부모를 그들의 몸짓과 말, 영광스러운 몸으로부터 정제했다. 나는 그들이 《엘(그녀)》이라고 발음하는 대신에 《아》라고 발음하고, 큰 소리로 말하는 방식을 새롭게 들었다. 이제 내게 자연스러워진 그 《점잖은》 몸짓과 올바른 언어 없이 그들의 원래 모습 그대로를 다시 만나게 됐고,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p.87)
책을 읽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 아버지에게 대들었던 날, 그때까지도 영관급 장교로 현역이었던 아버지는 거칠게 내 뺨을 때렸다. 독재 타도를 외치다가 쓴 소주를 들이켜고 집으로 들어가서 맞닥뜨린 군인 아버지에게 내뱉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떠오르지도 않는다. 물론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아버지가 그 사건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와 나는 그 전에도 후에도 데면데면한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비가 와도, 해가 쨍쨍해도, 두 강 사이를 건네는 뱃사공이었다. 어쩌면 그의 가장 커다란 자부심 아니 심지어 그의 존재 이유는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pp.100~101)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는 (작가는 1940년 생이다) 상대적으로 더욱 현대인 이즈음의 부녀 사이와는 달라 보인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양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아버지와 딸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의 ‘자부심’이나 ‘존재 이유’가 바로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라는 지적은 어찌 보면 경이로운 아픔이다. 아니 에르노는 이 소설로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하였다.
아니 에르노 / 신유진 역 / 남자의 자리 (La Place) / 1984BOOKS / 109쪽 / 2021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