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디 스미스《하얀 이빨》

인종주의와 다문화주의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와 과학과 종교와 가족과...

by 우주에부는바람


하얀이빨.JPG

어째서 몇 개의 단편 소설을 발표한 이력이 전부인 작가의 80쪽에 불과한 원고와 대략의 플롯에 많은 출판사들이 경합을 벌이며 열광하였는지, 소설을 읽고 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은 영국 런던의 브렌트 구 윌레스덴 그린이라는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은 마치 인종주의와 다문화주의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여기에 과학과 종교, 가족과 전통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쏟아져 내린 거대한 용광로 같다.


“부탁이야. 내 부탁 좀 들어 줘. 중요한 거야, 존스. 네가 집에 돌아갔을 때, 아니 우리가 각자 집으로 돌아간 다음, 누군가 동양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듣는다면 너의 판단을 유보해 줘... 사람들이 ‘동양인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해도 모든 사실을 알 때까지 판단을 보류해 줘. 사람들이 ‘인도’라고 부르는 땅은 천 가지 이름으로 통하고 수백만 명이 살아. 그 많은 사람들 중 똑같은 사람 둘을 보았다고 해서 인도가 이렇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잘못 판단하는 거야. 그건 달빛으로 인한 착각일 뿐이야.” (1권, pp.158~159)


소설은 기본적으로는 두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백인인 중년의 아치는 자살 시도 후 만난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 소녀인 클라라와 결혼하여 아이리를 낳는다. 사마드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그곳에서 만나 영국으로 데려온 알사나와의 사이에 마기드와 밀라트라는 쌍둥이 아들을 두었다. 아치와 사마드는 십대 시절 참전한 전쟁에서 함께 겪은 사건 이후 여태 친구로서 지내고 있다.


“... 청결하고 하얀 치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지. 예를 들면, 내가 콩고에 있을 때 흑인 놈들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것이 바로 하얀 이빨이었어. 내 말뜻 알 거다. 끔찍한 일이었지. 못할 짓이었어. 그리고 흑인들은 그 하얀 이빨 때문에 죽었다. 불쌍한 것들...” (1권, p.268)


소설의 첫 번째 챕터와 두 번째 챕터는 바로 이 아치와 사마드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그러던 것이 세 번째 챕터와 네 번째 챕터로 넘어가면 이들의 자녀인 아이리, 그리고 마기드와 밀라트로 주도권이 넘어간다. 여기에 샬펜이라는 성을 쓰는 한 가족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유전 공학자라고 할 수 있는 마커스가 이 살펜 가족의 아버지이다.


“종교가 마약이라면 전통은 훨씬 더 사악한 진통제다. 좀처럼 사악해 보이지 않으니까. 종교가 꽉 조이는 끈, 고동치는 정맥, 그리고 바늘이라면, 전통은 훨씬 더 가정적이고 복합적인 산물이다... 사마드에게 전통은 문화였고, 그리고 문화는 뿌리에까지 이르게 해 주는 것이었다. 뿌리는 좋은 것이요, 흠 없는 원칙이었다...” (1권, p.301)


샬펜 가족(아버지 마커스와 어머니 조이스 그리고 네 명의 아이들로 구성된)은 차례대로 아이리와 밀라트와 마기드를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인다. 어쩌면 이 샬펜의 집이야말로 전형적인 영국 가족 혹은 영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집을 통과하면서 이민자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아이리와 밀라트와 마기드는 (여기에 마커스 샬펜의 아들인 조슈아 샬펜을 더하여) 서로 다른 자리에서 희극적인 대립을 하는 처지로 점핑하게 된다.


“마기드 형이 여기서 지낸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밀라트가 말했다... 마르고 지치고, 눈가에 분노가 어려 보였기 때문에 사마드는 밀라트를 머물게 했다. 따라서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마기드는 샬펜 가족들과 지낼 수밖에 없었다... 조슈아는 부모님의 애정이 또 다른 익발에게로 전환되는 것에 격분하여 아이리네 집으로 갔다. 반면 아이리는 외견상으로는 그녀의 가족에게 돌아갔지만(‘1년 간 휴식’한다는 허락하에) 종일 샬펜네 집에서 지내며 그녀의 예금계좌 두 개를(1993년에 아마존 정글 여름 캠프에, 2000년에는 자메이카에 갈 계획으로.) 채울 돈을 벌려고 마커스의 일을 정리해 주었다. 종종 밤 늦게까지 일하고 소파에서 잘 때도 있었다.” (2권, pp.241~242)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미래쥐라고 불리는 유전자 변형 쥐를 발표하는 장소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소설 속의 대부분 인물들이 모이는 장면이다. 쥐를 소개하는 학자인 마커스와 마커스를 돕는 아이리, 그리고 어쩌면 차세대의 마커스라고 할만한 마기드가 한 쪽에 위치한다면 나머지 인물들은 단상의 아래, 그 반대편에 위치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 인물들의 의지가 모두 제각각이어서 소설은 더욱 폭발력을 갖는다. 아이리의 반대편에는 여호와의 증인으로 이 과학적 쇼를 반대하는 아이리의 할머니 호텐스와 그의 종교적 동지인 라이언이 있고, 마커스의 반대편에는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급진 단체 FATE의 일원인 마커스의 아들 조슈아가 있다. 마기드의 쌍둥이 동생인 말리트는 이슬람 단체 KEVIN의 일원으로 형을 향해 증오심을 드러낸다.


“... 아이리는 임신 8주째였고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리가 모르는 것, 스스로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깨달은 것은(이탈리아 주부가 애호박 무늬에서 성모의 얼굴을 볼 때처럼, 아이리가 자가 임신 진단 기구에 무시무시한 파스텔톤 푸른색이 나타나는 것을 본 바로 그 순간)아버지가 누규나는 것이었다. 지구상의 어떤 테스트도 이를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똑같이 숱 많은 검은 머리, 똑같이 반짝이는 눈. 똑같이 볼펜 끝을 씹는 버릇. 똑같은 신발 수치. 똑같은 디옥시리보핵산...” (2권, p.372)


이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자리에는 이들의 시작점이기도 한 아치와 사마드도 있다. 그리고 아치와 사미드의 반대편에는 전혀 의외의 인물,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이 뻔뻔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인물과 그 인물들이 겪는 무수한 사건들이 있는데 그 모두가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고, 그 정점에 바로 이 인물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놀라운 소설이다.



제이디 스미스 Zadie Smith / 김은정 역 / 하얀 이빨 (White Teeth) / 민음사 / 전2권 (1권 406쪽, 2권 417쪽) / 2009 (200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이디 스미스《온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