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 허스트베트《에로스를 위한 청원

다양한 주제를 향한 여성, 작가, 인간의 시선은 명료하게...

by 우주에부는바람

*2021년 1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한 해가 끝나고 다시 시작될 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아내와 인사를 나눈다. 서로의 안녕을 고대한다는 덕담을 교환한다. 고양이 들녘과 고양이 들풀을 찾아서 되도록 눈을 마주치고 가능하면 한 번 품에 안기도 한다. 온기로 가득 찬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다시 책을 읽는다. 아내도 자신의 태블릿 속 전자책으로 돌아간다. 나는 김원장의 《집값의 거짓말》을 읽었다. 아내가 무얼 읽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 나는 뭔가를 읽을 때면 방탕하고 호사스럽게 세계를 약탈한다. 실제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누비며 강도질을 하고, 영화에서 엽서에서 그림에서 심지어 만화에서 이미지들을 빼앗아온다. 그리고 어떤 책을 생각하면, 특히 내게 소중한 책을 생각하면, 내가 도둑질한 그 장소들을 다시 보고 감동을 받는다...” (p.52, <욘더yonder, 여기와 저기 사이> 중)


시리 허스트베트의 《에르스를 위한 청원》은 지난 해 가을 쯤 읽었고, 읽는 동안에 별다른 곡절 없이 침울해했다. 책은 어느 하나의 주제로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여성을 향한 여성인 작가의 시선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자신과 지금 당장의 자신을 냉혹하게 비교하며 다루기도 한다. 피츠제럴드나 찰스 디킨스 그리고 헨리 제임스와 같은 작가 혹은 작품을 살피기도 하고, 사회적 문제 혹은 사건에 대해 말을 보태기도 한다.


“... 좋은 책은 대개 이야기가 어디에서 펼쳐지는지를 충분히, 하지만 지나치지는 않게 설명한다. 충분하다는 건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이나 이야기나 시가 무엇인지 또 어디를 배경으로 하는지, 작가가 기대하는 바를 독자에게 떠먹여 주는 건 나쁜 책이다. 나쁜 책은 편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쁜 책을 읽는 것이다. 놀라움은 멋진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놀라움을 원치 않는다. 아이들이 자기 방이 바뀌는 걸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미 아는 것을 확인받기를 원하고, 대중 독자의 부상과 함께 소설이 인기를 얻은 18세기부터 이미 허구적 위안의 공급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독자(문학적 교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질이다)는 스스로 채워 넣을 여백을 원한다. 독자는 누구나 자기가 읽는 책을 쓰고, 거기 없는 것을 공급한다. 그 창조적인 발명이 그 책이 된다.” (p.59, <욘더yonder, 여기와 저기 사이> 중)


사실 시리 허스트베트의 소설을 아주 좋아한다. 폴 오스터(시리 허스트베트의 남편이다)의 소설보다 낫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리 허스트베트의 에세이에 나는 취약하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미술 평론집은 읽다가 잠시 멈춰 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이번 책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너무나도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내는 작가의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어 멈추지는 않았다.


“미국의 페미니즘은 언제나 청교도적 경향을 띠었고 에로틱한 진실에 억지로 눈을 감았다. 여기에는 엄격하고 실용적인 측면이 있다. 성적 쾌감은 각양각색이고, 여자들도 남자와 다름없이 차라리 멍청하면 다행인 변태적 행위에 성적 흥분을 느낄 때가 많다고 인정하면, 정치의식이 없는 사람이 된다. 성적 흥분은 항상 문화적인 성질을 띠며 사회가 규정한 경계들에서 그 이미지와 계기를 찾기 때문에, 이 주제 전체가 몹시 골치 아픈 문제다.” (p.68, <에로스를 위한 청원> 중)


글쓰기처럼 글읽기도 일종의 습관이다. 한 해의 시작에 맞춰 다짐해보자면 올해는 조금만 더 하드한 (여러 의미에서) 책들을 읽어보려 한다. 너무 수월한 책읽기에 사로잡히면 도통 반대편으로 거슬러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읽는 동안 이것저것 따져 보아야 하고 고개를 들어 머릿속으로 셈을 해보기도 하고 이미 지나온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해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독서로부터 계속해서 멀어지고 만다.


“... 나는 그의 글을 읽기 전에 그 남자를 만났지만, 그의 작품을 내가 그토록 좋아하지 않았거나 그가 내 글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의 작업은 23년간 우리 연애와 결혼의 내밀한 부분이었지만, 내가 읽었던 것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그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아는’ 것과 같지 않다. 그의 작품은 그 안의 내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나온다.” (pp.306~307, <어느 상처 입은 자아의 이야기> 중)


하지만 그런 책들을 읽는다 해서 그것들을 잘 정리해낼 자신까지는 없다. 그래도 애는 써볼 작정이다. 사실 글을 읽고 그것을 간단히 정리하는 나의 파일은 2018년 256페이지에서 끝났는데, 2019년의 마지막 페이지는 193쪽으로 줄어들었고, 2020년에는 160쪽으로 쪼그라들었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다른 책 두 권, 《사각형의 신비》,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도 버려두지 말고 서둘러 읽어야겠다.



시리 허스트베트 Siri Hustvedt / 김선형 역 / 에로스를 위한 청원 (Plea For Eros) / 뮤진트리 / 315쪽 / 2020 (200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캐롤라인 냅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