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봄이 되면 / 봄 아닌 걸 치워야 한다 // 아지랑이를 먹으면 죽는다 / 누가 말하는데 / 작은 인간은 천천히 그것을 먹는다” - <작은 인간> 중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소급하고 추앙하고 몰두하고 연거푸 심호흡하고 가라앉고 앙갚음하고 야위어가고, 그러니까 어지럽다. 돌아가야 하는 거처는 이미 문을 닫았고,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났고, 서둘러야 하지만 사지가 모두 어지럽다. 도용당한 과거는 기세도 좋아서 물러서지 않는다. 구부정한 길을 걷다 허기로 길을 잃고 잃어버린 길이 미로가 되고 회오리이거나 소용돌이인 바람들은...
저녁엔 얇아진다
나를 찾는다
부풀거나 야윈, 나라는 조각들
발치에 개켜두고
찾는 것은 나,
찾는 사람도 나
책상 위에 접혀 있는 것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
고양이가 핥아먹은 것
모두 다 나
무너지는 산을 등으로 막아야 하는 것도
나,
바람들은 서로를 보듬고도 평온해지지 않는다. 보듬을수록 어색해지고 어색하여 다툰다. 전쟁 같은 흑색이 또 전쟁 같은 백색과 뒤섞인다. 경계는 사라지고 담은 허물어진다. 폐허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하거나 폐허를 두고 떠나려고 한다. 앞으로 향한 손이 뒤를 향하는 손을 붙잡지 못한다. 외면하지 않으려고 마주치려고 하지만 이미 여윈 마음들이 차갑다. 나서는 법이 없던 그 마음들의 냉소가...
“웅크린 채 힘을 주고 자다 주먹이 되었다 / 이렇게까지 단단해지려던 건 아니었는데 / 무릎도 엉덩이도 등도 허리도 / 한 덩이가 되었다 // 나는 나를 어떻게 펼칠 수 있을까” - <베개 위에서 펼쳐지는 주먹> 중
냉소는 세상을 차갑게 만들고 나는 아우성으로 다시 세상을 덥히고자 한다. 삶은, 어울리지 않는 시간들이 소복하게 쌓인 한 여름의 탑, 허물어지고도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기억의 상차림, 뒤돌아선 순간 굳어버리는 주체이며 객체인 내가 엉거주춤 마주하는 것, 아무리 서둘러도 죽음 앞에서만 마무리되는 죽음 앞에서 무조건 마무리되어야 하는 불멸과 소멸의 위대하고 허름한...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 죽는 법을 자꾸 잊는다 / 무덤 속에서도 자꾸 살아난다 / 사는 일이 큰 이득이란 듯,” - <시인하다> 중
허름한 하루가 저물었고 저물어가는 중이다. 이득을 보고자 하였다면 이렇게 살았을까, 스스로를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쓴다. 하루종일 질질 끌려가던 시간이 겨우겨우 내게로 와 달라 붙는 것 같은 시간에 당도해 있다. 하루를 정리하는 일은 기약 없는 내일을 미리 정리하는 것처럼 요령 부득, 소소한 사랑으로 살아내려 하였는데 나는 아직도 졸렬하다.
박연준 /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 문학동네 / 163쪽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