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형국에서도 이어지는 소설에서 소설로...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 나는 스물두 시간 전에 수미가 이 의자에 앉아 이 풍경을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딱 10초만, 이 의자가 저 풍경들로부터 나를 가려주는 곳에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흰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다가와 말했다. “10초면 됩니다. 마스크를 내리고 고개를 젖히세요.” 면봉이 콧구멍을 지나 비인두에 닿았을 때,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고였다.』 (p.44) 소설이 끝나기 직전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부터 외부에서 자극된 눈물일 수 있지만, 아무런 전조 없이 그리된 것이라고 누구도 말할 수는 없다. 코로나로 온통 보낸 한 해가 있었고, 그것과는 무관하게 폭발할 것들은 어떻게든 폭발하고 있었다.
최은미 「보내는 이」
진아 씨와 나의 아이는 이름에 똑같이 윤이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윤이들은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고, 나는 때때로 진아 씨의 집에서 윤이들이 놀고 있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나는 나의 달 하윤이가 진아 씨의 딸 서윤이가 싸우지 않기를 바랐다. 나의 진아 씨에 대한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도통 모르겠다 싶기도 하다.
김병운 「한밤에 두고 온 것」
“나는 정지된 화면처럼 오래도록 미동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눈에 담다가, 만났으나 아직 만난 게 아닌 두 사람 때문에 괜히 마음 졸이다가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불필요한 시선이 남아 있는 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결코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어떤 확신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시간은 오로지 두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했고, 고로 오늘 내게 주어진 유일한 지문은 퇴장이었다.” (p.104) 게이이자 연극배우인 나는 퀴어 영화를 만드는 헤테로 성향 여성 감독이 영화 속에 구현하는 시선에 불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못하고 있다. 나와 그 여성 감독을 연결시켜주던 김유진을 대신해 맡았던 희곡 수업에서 나는 안부현을 만났고, 안부현의 부탁으로 안부현이 오래 전 친구인 수현과 만날 때 아들 역할을 하기로 한다. 안부현과 수현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가 감지되고 그것을 위해 나는 자리를 피하기로 한다.
박형서 「실뜨기 놀이」
“나는 불안했다. 일이 잘못되어가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런데 더듬어보면 아들이 먼 타국에서 외롭게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잘못되는 건지 가족의 품에서 자라나 부모의 꼬락서니를 물려받는 게 잘못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16대 달라이라마라고 해줬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염치를 아는 인간이었다.” (p.121) ‘인생은 한 번뿐인데...’라고 혼잣말하는 아내와 아내로부터 들은 찌질하다는 말에 동네 공원으로 피해 술을 마시는 나와 그런 나를 찾아와 조용히 옆에 앉아 있곤 하는 아들 성범수로 이루어진 가족이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성범수가 달라이라마의 현신일 수 있다며 승려들이 찾아오고 몇몇 시험에 성범수가 통과하는 과정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그래서, 라는 접속부사를 좋아한다. 왠지 그래서, 라고 말하면 모든 말의 앞뒤가 맞아지는 것 같다.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도 그래서? 라고 되물어주면 훌륭한 경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b위 경우, 그래서? 라고 물으면 자신의 이야기에 내가 흥미 없어 하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다. b는 나의 흑역사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죽어줘야겠어, 라고 b에게 말한 적도 있다. 실제로 b에게는 한 톨의 원망도 없는데도 나는 그런 말을 자주 한다. 진짜로 죽이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있다. 나는 남을 죽이고 내 인생이 망가지는 악몽을 자주 꾼다. 악몽 속의 나는 항상 사소한 실수로 살인을 한다. 원망도 증오도 없다. 그런 실수로 인생이 망가져버리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나는 시체를 유기한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지는 법. 그런 꿈을 꾸다 깨어나면 그렇게 안도할 수가 없다. 내 인생이 망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런데 망가지지 않은 것이 맞나? 어쨌든.” (p.148) 그리고 이 문단에 이어 다음 문단은 “그래서, 나는 휴먼고시원의 생활을 정리하고 이모의 일도 미리 배울 겸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거였다.”로 이어진다. 작가의 날아갈 것 같은 문장이 재미있어서 길게 인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내려간 고향의 뜨개질 가게에서 나는 소일을 하고 근처 핫도그 가게에서 핫도그를 사먹으며 젊은 사장과 농을 주고받는다. 경쾌한 문장에 반하여 작가의 책 두 권을 더 찾아 읽어볼 작정이다.
오한기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
초현실적인 세입자 정의구현 분투기라고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로부터 팽, 하고 소환되는 사부님의 존재나, 그러한 팽 사부와 핸드폰으로 소통하는 진진의 존재나, 등에 팽 자가 그려진 거북이의 존재가 초현실적이고, 이 존재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나는 안타깝다.
윤성희 「네모난 기억」
“인생 새옹지마란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어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정민이고, 정민의 아버지는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대학에 갔고 공무원이 될 수 있었고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대학 입학 후 민정이라는 마음에 드는 선배를 만났지만 그 선배와 함께 사고를 당하여 척추를 다쳤고 보다 나은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였다. 다친 것은 아버지랑 비슷하지만 그 다음 진행은 더디다. 나는 몇 년의 터울을 두고 계속 민정과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는 중이다.
임솔아 「단영」
어느 산에 위치한 사찰의 주지인 효정 스님은 그 사찰을 물려받을 이를 찾는 일의 일환으로 대안 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을 거둔다. 그렇게 거둔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라지만 그곳에 머물기 보다는 그곳을 떠나기를 선택한다. 단영이 그렇고, 단영을 위해 미리 떠나는 아란이 그렇다.
천희란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일반적인 수녀원은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인들을 구원할 작정으로 카밀라가 만든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이 수녀원으로 불리는 것일 뿐이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라우라가 있고 라우라의 엄마가 있었다. 라우라의 엄마는 그곳을 떠나기를 원했고 라우라는 그 반대를 원했다. 엄마는 그곳을 떠나는 것을 자유로 생각하며 라우라와 분리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라우라는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했고 저택을 떠나지 않기를 원했다. 여성에서 여성에게로, 카밀라에게서 라우라에게로 이어지는 역사가 있다.
최은미 외 / 2021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 현대문학 / 300쪽 / 20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