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생애를 혓바닥에 올려놓고 요설을 늘어놓다보면...
얼마 전에 필립 로스의 《위대한 미국 소설》을 읽다가 포기했다.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필립 로스인데. 두려운 마음으로 《새버스의 극장》을 집어 들었다. 쉰두 살의 정부와 예순 네 살의 애인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씹’과 ‘박는다’라는 단어가 수없이 등장하여 일단 당황하였다. 예순 네 살의 애인은 ‘새버스’라는 유대인이고, 쉰두 살의 정부는 ‘드렌카’라는 여인으로 오래전 유고슬라비아에서 미국으로 왔다.
“... 그녀의 상스러움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독특한 힘이었으며, 그녀의 삶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뭐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는 뭐란 말인가? 그녀는, 그녀와 허용되지 않는 것을 탐하는 그녀의 멋진 취향은 그와 다른 세계를 연결해주는 마지막 고리였다...” (p.51)
하지만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렌카는 그만 암에 걸려 죽는다. 드렌카는 어느 날 새버스에게 일부일처제와 같은 연애를 요구하는데, 아마도 그러한 비이성적인 요구 뒤에는 그녀의 병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새버스에게는 로즈애나라는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부인이 있고, 드렌카에게는 함께 여관을 운영하는 남편 그리고 지역에서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이 있다.
“... 그녀가 아들의 성취에 기뻐하는 것은, 새버스가 보기에, 그녀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아닐지 몰라도 단연 가장 순수한 면이었다. 어느 한 인물에게 그런 극단적인 양극성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 있는데―거짓을 모르는 순진한 소녀라면―인간 모순의 열렬한 팬인 새버스는 금기에서 자유롭고 전율을 추구하는 드렌카가 법이 흠 없이 집행되는 것을 삶에서 가장 진지한 일로 보는 아들을, 경찰이 아닌 사람은 완전히 불신하게 되어 이제 경찰 외에는 친구가 없다고 그녀에게 설명하는 아들을 무척이나 숭배하는 것에 홀려 종종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pp.112~113)
소설은 드렌카의 죽음이라는 현재로부터 시작하지만 새버스의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고간다. 특히 새버스에게는 로즈애나 이전에 니키라는 아내가 있었고, 니키는 아주 오래전 사라졌다. 니키는 새버스가 거리에서 손가락을 이용한 외설스러운 길거리 연극을 하던 시절 만난 여인이고,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공연장을 갖게 되었을 때는 함께 연극을 공연하던 파트너이기도 했다.
“새버스 씨는 첫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뒤 오래지않아 외딴 산속 마을로 떠났고,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두 번째 아내의 부양을 받았는데, 그녀는 오랫동안 그의 좆을 자르는 것을 꿈꾸다가 학대받는 여성 그룹으로 피신했다. 삼십 년간 은신하면서 그는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이웃 드렌카 발리치 부인을 거의 매춘부로 만드는 것 외에는, 가망 없는 미치광이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를 오 분짜리 인형극으로 개작한 것 말고 다른 작업은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족으로는 뉴저지주 넵튠의 베스 모모某某 묘지에 거주하는 거의 어머니 예타의 유령이 있다. 그녀는 그의 생애 마지막 해 동안 쉬지 않고 그를 쫓아다녔다. 그의 형 모턴 새버스 중위는 2차대전 때 필리핀에서 격추당해 전사했다. 예타 새버스는 그 충격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유족으로는 매더매스카폴스에 거주하는 아내 로즈애나가 있다. 그녀는 칸타라키스 양이 사라지던 밤 혹은 그에 의해 살해되고 시신이 처리되던 밤에 그와 동거하고 있었다... 새버스 씨는 이스라엘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pp.313~314)
하지만 니키는 어느 날 공연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새버스는 그 시간 지금의 아내인 로즈애나와 함께 있었다. 그날 이후 새버스는 다시 니키를 만나지 못했다. 니키를 찾아다니다 포기하고 뉴욕을 떠났고, 그 이후 로즈애나와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이 새버스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인 캐시 굴즈비와의 부적절한 통화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는 사건을 겪었고, 로즈애나는 알콜중독자가 되었다가 지금은 그로부터 일단 벗어난 상태이다.
“모리스 새버스 / ‘미키’ / 사랑하는 매음굴 단골손님, 유혹자, / 남생 행위자, 여성 학대자, / 도덕 파괴자, 젊음에 올가미를 거는 자, / 부인 살해자, / 자살 / 1929 ~ 1994” (p.603)
새버스는 로즈애나를 떠나 친구의 장례식에 들렀다가 오래전 자신이 살던 동네에 들르고, 부모가 묻힌 묘지를 찾아가고,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에게 호언하고, 드렌카의 묘지를 찾고, 멀리서 자신의 집을 바라보기도 한다. 새버스는 타살의 근처에 거의 다다랐지만 실패하고, 자살에 이르지도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필립 로스는, 한 남자의 생애를 혓바닥에 올려놓고 요설을 늘어놓으면 바로 이런 모양을 가진 소설이 만들어진다, 라고 장담한다.
필립 로스 Philip Roth / 정영목 역 / 새버스의 극장 (Sabbath’s Theater) / 문학동네 / 729쪽 / 2020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