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 《스위트 투스》

거친 냉전의 시대에 사로잡힌 어린 여인의 거칠었던 사랑...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이 내 이야기이고, 사십여 년 전의 이야기이며, 그것이 ’영국 보안정보국의 비밀 임무 수행‘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 임무가 결국 실패하고 개인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이라는 사실까지 똑똑히 밝힌다. 일종의 첩보물이라는 내용적 측면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모든 패를 보여주는 과감함이 눈에 띤다. 《스위트 투스》는 이언 매큐언의 열두 번째 장편 소설인데, 그쯤 되어야 보일 수 있는 과감함이다.


“...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내가 표준으로 여기는 것―팽팽함과 매끄러움과 탄력―은 젊음의 일시적 상태였다. 하지만 내게 노인은 참새나 여우처럼 별개의 종으로 여겨졌다... 노인들은 피부가 더이상 몸에 맞지 않는다. 성장을 고려해 일부러 크게 맞춘 교복 재킷 아니면 잠옷처럼 그들에게, 우리에게 헐렁해진다. 그리고 토니는 특정한 빛 속에서 보면, 침실 커튼 때문이었겠지만, 해묵은 문고본처럼 누르스름했고 다양한 불운의 흔적이 읽혔다...” (p.42)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세리나 프룸이다. 아버지는 성공회 주교이고 한 살 반 터울의 여동생 루스가 있다. 루스가 반항적인 기질의 아이였다면 나는 모범생 타입이었다. 나는 영문학을 택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수학과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토니를 만나게 된다. 토니는 내가 앞서 사귀었던 제러미의 선생님이었고, 제러미가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따라 떠난 이후 내 삶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 나는 작품에 홀렸고 그다음에 사람에게 빠졌다. 그것은 중매결혼, 6층에서 주선한 결혼이었고 때는 이미 늦어 나는 도망칠 수 없는 신부가 되었다.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그의 곁을 지키며 그와 함께 있을 것이고, 그건 내 이익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여전히 그를 믿어서였다. 그가 독창적인 목소리와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라는―그리고 나의 멋진 연인이라는―믿음은 부실한 작품 두어 편으로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그는 나의 프로젝트, 나의 일, 나의 임무였다. 그의 예술, 그의 작품, 그리고 우리의 연애는 하나였다. 그가 실패하면 나도 실패하는 것이었다...” (pp.328~329)


내가 영국의 국내 정보국인 MI5에 들어간 것은 토니가 나를 떠난 뒤였다. 토니는 나를 내쳤고 나는 토니가 죽은 후에야 토니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그때는 이미 정보국에 들어간 뒤이고, 그 무렵 나는 스위트 투스라는, 일종의 문화계 인물 포섭이라는 비밀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포섭 대상인 톰 헤일리라는 소설가와 사랑에 빠진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소설 또한 좋아하게 된 것이다.


“... 나는 토니의 무덤가 풀밭에 앉아 그를 생각하고, 우리가 다정한 연인이었던 여름을 추억하고, 조국을 배신한 그를 용서한다. 그 일은 선의에서 비롯된 잠깐의 어리석음이었고 실제로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공기와 빛이 깨끗한 쿰링에에서는 뭐든 해결될 수 있기에 그를 용서할 수 있다.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 근처 나무꾼 오두막에서 나를 무척 좋아해주고 요리를 해주고 이끌어주는 나이든 남자와 함께 보낸 주말보다 내 삶이 더 낫고 단순했던 적이 있었던가? (p.463)


하지만 톰을 만나기 이전에 정보국의 상사로서 만난 맥스가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약혼녀를 언급하며 나의 접근을 거부했던 맥스는 어느 순간 파혼을 하고 나의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톰의 연인이 된 뒤이고, 맥스는 모든 사실을 톰에게 알린다. 그것으로도 두 사람을 떼어 놓지 못하자, 맥스는 한 걸음 나아가 언론에 스위트 투스 작전을 알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 민스미트 작전이 성공한 건 창의력이, 상상력이 정보기관을 이끌었기 때문이야. 참담한 비교를 하자면, 쇠퇴의 선구자 스위트 투스는 그 절차를 거꾸로 뒤집어 정보기관이 창의력에 간섭하려고 하는 바람에 실패한 거야. 우리의 시대는 삼십 년 전이었어. 우리는 쇠퇴하고 있고, 거인들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지. 당신과 당신 동료들은 처음부터 그 프로젝트가 썩었고 실패할 운명이라는 걸 알았지만 관료주의적인 동기에 따라 움직이며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는 이유로 그냥 진행했던 거야...” (p.520)


소설의 제목이자 작전명인 ’스위트 투스‘는 단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속에서 내가 속한 정보부가 우회적으로 톰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데 아마 그것이 단 것일 터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이고, 냉전의 시대에 자연스럽게 만연하였던 일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십대 초 아직 어린 여인이 거치게 되는 거친 사랑이 그 냉전의 시대에 촘촘하게 박혀 있다. 전체적인 소설이 일종의 액자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액자 안의 액자로 등장하는 톰의 또 다른 소설들도 흥미롭다.



이언 매큐언 Ian McEwan / 민승남 역 / 스위트 투스 (Sweet Tooth) / 문학동네 / 525쪽 / 2020 (201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필립 로스《새버스의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