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중독의 사태 안에서도 나름의 명징함으로 버틴 흔적들...

by 우주에부는바람

“... 나는 주말 약속을 거의 잡지 않는다. 최소한 사람을 만나는 약속은 잡지 않는다. 내가 금요일 밤에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찾는 레시피는 《뉴욕 타임스》 십자말풀이와 <호머사이드> 새 에피소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개와 숲을 산책하는 일 위주로 돌아간다. 인간 동행이 함께할 때도 있지만 늘 그렇진 않다. 내가 인간 혐오자라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작지만 세심하게 키워온 사교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한 줌의 소중한 친구들이 있고, 사랑하는 언니가 있다. 그들의 존재와 지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pp.43~44, <명랑한 은둔자> 중)


책에는 다섯 개의 챕터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 챕터인 ’홀로‘에는 세 편의 글이 들어 있다. <혼자 있는 시간>과 <수줍음의 옹호>, <명랑한 은둔자>가 그것들인데 내밀하고 진솔하여 진심으로 읽힌다. 고충의 토로인지 허물없는 고백인지 따져볼 겨를이 없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던, 한번쯤은 미루어 짐작하였지만, 실제로 내가 가닿지는 못하였던 문 너머의 풍경이 충분히 확인될만한 글들이었다.


“... 나는 내 난장판을 다스리는 자이고, 내 텔레비전 리모컨의 왕이고, 주요한 일이건 엉뚱한 일이건 내 생활의 모든 세부 사항을 손수 쓰는 작가다... 홀로 있는 상태는 개성의 온상이고, 나는 홀로 있는 상태가 그렇게 변덕을 맘껏 발산하도록 해준다는 점이 좋다.” (p.47, <명랑한 은둔자> 중)


책의 서두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에는 ’냅은 2002년 4월에 폐암 진단을 받았고, 5월에 결혼했고, 6월에 죽었다.‘라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냅은 마흔 두 살의 나이에 죽었고 그 직전에야 결혼한 것이다. 책에는 작가가 주로 삼십 대에 쓴 글들이 실려 있는데, 당시에 작가는 혼자였고 그 혼자임을 즐기기보다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 그것을 찬양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로 거기에 액자처럼 못으로 박아 놓는 쪽에 가까웠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그 은혜의 시기는 보통 상당히 짧다. 대부분은 최대 10년에서 15년이고 어떤 경우는 그보다 짧다... 이전까지는 늘 부모가 당신을 걱정했고, 당신은 그 걱정을 똑같이 되돌려주는 데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당신이 아니라―어른이 아닌가? 그 역할이 뒤바뀐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일 수 있고, 그럴 가망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전까지 믿어온 모든 가정이 무너진다...” (pp.119~120,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본다는 것> 중)


책의 중간 영역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다수 실려 있다. 쌍둥이이라는 자신의 태생을 진득하니 바라보고,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일년 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든 기록하는 글들이다. 정신분석학자였던 아버지와 화가였던 어머니를 향한 애도는 감정적이지 않고, 그리고 지금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의사로 일하는 쌍둥이 언니와의 관계는 일반적인 자매애의 범주 안에서 변주되지는 않는다.


“어떤 중독이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행동이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 나는 그 선을 그해 여름 넘었던 것 같다. 내가 굶어서 없애려고 했던 것들이―외로움, 불확실성, 분노―점차 덜 중요해지고 굶기 그 자체가 중요해졌다...” (p.162, <음식이 적이 될 때> 중)


사실 작가의 삶에서 가족만큼이나 끈질긴 유대(?)를 보인 것은 섭식 장애와 알코올 중독이었다. 작가는 굶음으로써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했고, 알코올을 통해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려고도 했다. 중독의 상태에서 연애를 하거나 연애를 그만두었고, 중독의 상태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작가가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죽은 다음 해의 일이다. 작가는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을 썼다.


“... 각자 선택했던 중독의 대상이 없는 채로 고통스러운 순간을 반복하여 겪다 보면, 결국에는 감정의 근육이 길러진다. 우리가 술을 마셔서―혹은 굶어서, 먹어서, 도박을 해서, 살을 찌워서―감정을 몰아낼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를 이해해볼 기회를, 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의 지뢰들과 제대로 한번 싸워볼 기회를. 중독은 우리를 보호해줄지 몰라도 성장을 저지한다. 사람을 한층 더 성숙시키는 인생의 여러 두려운 경험들을 우리가 온전히 겪지 못하도록 막는다. 중독을 포기하면, 그래서 그런 힘든 순간들을 온전히 겪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근육들을 구부리게 된다. 자라게 된다.” (p.224, <마취제 없는 삶> 중)


책에서 치밀하게 다뤄지고 있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기질들은 그 기질들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을 막아서는 기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캐럴라인 냅은 그런 기질을 가진 인간이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런 기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을 해냈다. 감정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일상의 저주라고 부를만한 중독의 사태 안에서도 나름의 명징함으로 버틴 흔적이 보인다.



캐럴라인 냅 Caroline Knapp / 김명남 역 / 명랑한 은둔자 / 바다출판사 / 343쪽 / 20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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