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쓰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연결시키며...
현대문학에서 2016년에 출간된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선에는 초기작인 <사육>외에 22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오에 겐자부로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선집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고무되어 어렵게 구한 1996년에 고려원에서 나온 소설집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을 다시 읽었는데, 그 감흥이 하이텔 시절 복사된 A4용지로 읽을 때와 같지는 않았다. 새로운 번역본으로 재출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는 프랑스어를 읽거나 영어를 읽으면서 갖춰졌습니다.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도 주로 사전에 의지해 읽어가면서...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직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소설의 세계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p.67)
《읽는 인간》은 오에 겐자부로가 2016년 6월에서 12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준쿠도 서점 이케브쿠로 본점에서 연 강연의 내용을 수정 정리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읽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쓰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연결시켜 강연을 이어간다. ‘자신이 만든 책의 숲에서 그 숲을 거닐며 책을 읽어나간다’는 말이 오에 겐자부로의 전생에를 통해 완성되어가는 느낌이다.
“이렇듯 외국어 책을 읽는 것과 일본어 소설을 쓰는 것이(완전히 다른 행위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여운을 남깁니다. 어떤 소설의 근본적인 톤, 음악으로 보자면 선율 같은 것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체’라고 부릅니다. 소설의 스타일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며, ‘grief’라는 작은 단어 하나에서 문장으로, 이어서 작품 전체로 전개됩니다. 나아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지닌 인간을 바라보는 견해, 사고방식,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와도 이어지는 것이죠. 그것이 ‘문체’이며, 결국 우리는 이것을 읽어내기 위해 소설을 읽고 소설로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p.82)
《읽는 인간》에는 다양한 오에 겐자부로에게 영향을 끼친 여러 책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거의 최초로 읽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있고, 대학을 결정짓고 이후의 오에 겐자부로를 있도록 만든 것은 와타나베 가즈오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이다. 이후로도 작가는 에드거 앨런 포의 《포 시집》,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들과 T. S.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 단테 《신곡》 등을 거론하며 그것들이 자신의 작품 활동과 어떻게 연계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잠깐, 제 ‘인생의 습관’이 된 독서의 기본 원리를 밝혀두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즈음, 야나기다 구니오라는 민속학자의 책을 읽고 그 뒤로 제가 쭉 해온 방법인데요, ‘배우기, 외우기, 나아가 깨닫기’입니다.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배우는데, 이 ‘배우다まなぶ(마나부)’라는 단어는 옛말인 ‘흉내 내다まなぶ(마네부)’와 어원이 같아요. 선생님 말씀을 흉내 내는 것에서 시작하죠. 그렇게 습득한 것을 실제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타인에게 배워서 새로운 걸 알게 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것이 ‘깨닫기’입니다.” (p.187)
특히나 오에 겐자부로는 스승의 조언에 따라 3년 동안 한 작가나 사상가의 저서나 연관 저서를 읽는 습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종의 전작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 그렇게 샅샅이 읽어낸 것들이 자신의 창작 활동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갖게 하지만 실제로 그럴 엄두가 나는 방식은 아니다.
“말년의 양식, 즉 ‘후기 스타일’이란 생애 후반에 죽음이 멀지 않은 예술가가 지금껏 해온 작업이나 그 시대의 관습과는 전혀 다른, 기묘하기까지 한 작풍과 삶의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표현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특이한 노인이 위험하고 기괴한 행동을 저지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저야말로 바로 그 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p.213)
책의 말미에는 책의 다른 부분에 실린 강연과는 상관이 없는, 오에 겐자부로와 삼십 년 동안 교류를 했던 에드워드 사이드를 기리며 수행한 강연이 실려 있다. 그 강연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라는 사이드의 책을 거론하는데, 창작자들의 말년의 활동을 향한 거센 추동으로 읽히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저 ‘읽는 인간’으로 늙어가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인데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 / 읽는 인간 / 위즈덤하우스 / 255쪽 / 2015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