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허용되는 마음이 자꾸 커지며 견고해지는 올리브라는 정체성...
《올리브 키터리지》는 2008년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것은 2010년이다. 나는 이 책을 이년 전에야 읽었는데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캐릭터에 크게 반했다. 올리브는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 솔직하며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탓에 주변에 은근히 적들이 많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곰곰이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작은 악의조차 찾아낼 수 없는 올리브라는 인물에게 조금씩 허용되는 마음이 생겨서 당황하였던 기억이 난다.
『... 그는 그녀에게 아주 잘하고 있다고, 며칠 뒤에는 집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여든세 살 먹은 노인이에요.” 그녀가 그를 보며 말했다. 두꺼운 안경 너머 그의 눈이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 세상에서 그 나이면 아기예요.”』 (p.391)
《다시, 올리브》는 그렇게 《올리브 키터리지》가 나오고 십일 년이 지난 2019년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올해 번역 출간되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전작인 연작소설집과 마찬가지로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출연하는, <단속>과 <분만>을 거쳐 <심장>과 <친구>에 이르는 열세 편의 소설을 싣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 올리브 키터리지는 보다 나이 든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혼한 뒤에야 잭은 올리브의 불안 수준이 높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발을 끊임없이 떨었고, 느닷없이 조앤 포목점에서 천을 사야 한다며 불쑥 집을 나가곤 했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밤에는 여전히 그를 꼭 끌어안았고, 그도 여전히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또 한 해가 지나자 그들은 밤에 끌어안고 자는 대신, 같은 침대를 쓰면서 밤중에 누가 담요를 자기 쪽으로 끌어갔는지를 놓고 다퉜다. 정말로 부부가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불안이 차츰 줄었다. 조용히, 잭은 그것에 대해 큰 기쁨을 느꼈다.” (p.239)
전편에서처럼 올리브와 오랜 세월 함께 한 남편 헨리가 죽고 한 남자를 잠시 만나게 되는데, 이번 작품집에서 올리브는 바로 그 남자 잭 케니슨과 재혼을 하게 된다. 올리브는 헨리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잭 케니슨의 집으로 옮겨 온다. 아들에게 이 결혼은 크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올리브는 상관하지 않았다. 올리브는 분명 자기중심적이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잘난 체를 참지 못하였고 차별을 싫어했다. 아마도 평생 동안 그랬다.
『... 돌아오면 집에 온 것이 기뻤지만, 여기가 잭의 집이라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잭의 의자가 입을 벌리고 비어 있는 모양새가 보기 싫어 거기에 앉았다. 이 의자에 앉으면 이따금 깊은 슬픔이 그녀를 흔들어놓았다. 헨리와 함께 지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 집은 이미 허물어졌고, 그녀는 그 터를 지나가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잭이 침대 위 그녀의 옆에서 죽은 그날 밤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잘 자, 올리브”라고 말하고 손을 뻗어 불을 껐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순간적인 미소를 지었는데, 지금 기억해보면 그것은 그녀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낸 미소 같았다. 올리브는 이런 것, 즉 자신이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정의 변화―순식간에 지나가는―같은 것을 알아보기 시작할 정도, 딱 그 정도의 시간만큼 그와 함께 살았다...“ (p.409)
두 번째 남편 잭도 이제 죽고 혼자 남겨진 올리브가 혼자 생활하다 크게 다치고, 더 이상 혼자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노인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아파트에 들어간 다음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가슴이 저릿저릿 했다. 대실금이 생기고 기저귀를 사야 하는 지경에 놓인 상태에서도 놓아버릴 수 없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자존심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 적어도 (상상도 못하겠어, 라고 할 수는 없는) 그 근처에 나도 다다랐구나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올리브는 어떤 기억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저 의자에 앉아 창밖 모이통에 모여든 새들을 지켜보았고,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p.446)
여전한 것 같으면서도 《올리브 키터리지》의 올리브와 《다시, 올리브》의 올리브가 아예 같지는 않다. 그때의 올리브가 지금의 올리브에 비해 낫다고 할 수도 없고,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장년에서 확실한 노년으로 거듭난 올리브는 최근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아들에게 부탁해 타자기도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여전히 올리브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독보적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 정연희 역 / 다시, 올리브 (Olive, Again) / 문학동네 / 474쪽 / 2020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