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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김신회 《아무튼, 여름》

좋아하였어도 지긋지긋하였던 2020년의 여름...

*2020년 8월 2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일요일이 처서였다. 모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입이 비뚤어져 있었다. 입추는 워낙 여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그것이 가을의 입구라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래도 처서는 되어야 이제 여름의 끝이 멀지 않았구나, 안도할 수 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즈음의 모기는 한 여름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가을이 되면 그제야 존재감을 뽐내기 일쑤다. 모기의 입이 비뚤어져 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내게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여름날의 추억이 있다. 여름이 그 추억만큼 나를 키운 것이다.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너그럽게 나를 지켜봐준다.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 같은 사람이다.” (pp.14~15)


  여름의 끝이 선언되기 이전에 서둘러 《아무튼, 여름》을 읽었다. 네 개의 계절 중 유독 여름을 사랑하는 작가의 여름에 대한 심상이 가득한 글들이다. 심상을 끌어내는 추진력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가을이나 겨울이나 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고, 그래서 어쩌면 홀대를 받아 왔다고 생각되는 계절인 여름이, 다른 계절에 앞서 가장 먼저 아무튼 시리즈의 하나로 등극했다는 사실은 새롭다.


  “... 슬픔은 대출금 같은 것이다. 애써 모른 척, 괜찮은 척해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꾸 외면하거나 도망치기만 하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저 실컷 슬퍼하는 것으로 착실히 상환해나갈 수밖에 없다.” (p.85)


  사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여름을 아주 싫어하는 아이였는데, 그 이유는 왼쪽 팔에 커다란 화상의 상처 자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름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였고 여름과의 접점을 어떻게든 줄이고자 노력할 따름이었다. 되도록 늦게까지 긴 팔 옷을 입었고 서둘러 긴 팔 옷을 입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봄에서 가을로 건너뛰는 상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올여름에는 책 한 권 들고 언제든 혼술하러 갈 수 있는 동네 술집을 찾아볼 거다. 가서 나중에는 기억도 안 날 책을 열심히 읽고, 틈틈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생각도 하면서 나 자신과 독대 좀 해야겠다. 여름은 그러기 위한 계절이니까. 나른하고 게으를수록 좋은 계절이니까...” (p.100)


  물론 오래 전의 일이다. 이제 나는 《아무튼, 여름》의 저자만큼이나 여름을 좋아하는데 이십여 년 전 수영을 시작한 것이 그 좋아함의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가 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알게 되었고, 이후 여름이 되면 오픈 워터로 나가서 몇 킬로미터씩 수영을 하고는 했다. 《아무튼, 여름》의 저자는 여러 이유로, 수영 전후로 샤워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수영을 배우고 있지 못하거나 않고 있는데, 아마도 수영을 배우게 된다면 지금보다 여름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변영주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이 마흔이나 쉰 살쯤 됐을 때 부모의 삶이 이해된다면, 그 부모는 좋은 부모라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모는 좋은 부모가 맞다, 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쉰이 될 때까지 더 기다려보겠다.” (p.164)


  ‘아무튼’ 이번 2020년의 ‘여름’은 길고 길었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마로도 충분히 힘들었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코로나 19의 재유행으로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정치 세력과 변태적인 종교 세력의 하이브리드가 바이러스감염증 창궐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결과이다. 아무튼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2020년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신회 / 아무튼, 여름 / 제철소 / 171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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