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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목수정《밥상의 말》

내가 먹을 밥을 내가 지어서 먹기 싫어진 노모를 떠올리며...

*2020년 9월 1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버지의 병이 확정되고 난 다음부터 토요일 저녁 식사는 부모님과 우리 내외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하는 것으로 정했다. 물론 부모님 댁이나 우리 집에서 하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원하시는 식단에 맞추어 식당으로 움직였다. 다만 아버지와 아내가 홍제동에 있는 샤브샤브 집에 크게 만족했기 때문에 두 번에 한 번은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시래기 생선 조림이 맛있는 고래식당이나 한정식집인 수빈도 우리가 종종 들르는 곳이다. 


  “하루 세 번 돌아오는 밥시간. 종종, 이 정도 밥 했으면 됐지, 또 해야 돼? 싶을 때가 있다. 투수로 선발되어서 9회 말까지 잘 선방했는데 구원투수도, 선수 교체도 없이 다음날이면 또 내가 방어해야 하는 해일처럼 끝없이 밀려온다. 야구 선수들은 몇 달 하다 보면 시즌 오프가 있고, 특히나 잘 해내고 나면, 그에 따르는 눈부신 보상도 있건만 밥하기는 나 포함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져야 끝난다. 외할머니는 여든다섯에 이르러서야 밥 짓기를 멈추셨다. 돌아가시기 2년 전에서야.” (p.43)


  이런 주말의 식사 회동은 아버지를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 각별히 집밥을 좋아하는 아버지로부터 엄마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환자를 위한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려고 애쓰는 엄마의 고군분투를 우리는 잘 알았다.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에 갔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토요일 우리 내외의 일정이었다.


    “음식 하는 노동은 각별하다. 요리사의 영혼을 한 움큼 집어넣어 새로운 맛의 세계를 짓고 그것이 사람들 입 속에 들어가게 하는 일이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들은 피와 살이 되고 뼈가 되며 아이는 식탁 위에 담긴 온기와 사랑을 함께 섭취하며 성장한다. 덕德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어떻게 쌓는 건지 모르지만 밥을 한 끼 지어낼 때마다 아이가 품고 살아갈 포인트를 적립하는 기분이다. 이 포인트를 세상을 향해 적립하면 그것은 덕이란 것으로 전환될지도.” (p.112)


  하지만 광화문 집회와 그로 인한 코로나 재확산 이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 토요일의 회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버지는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는 친구 분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예비역 장교이시다. 엄마는 아버지가 바로 그날 광화문 근처에서 친구 분들과 삼계탕 미팅을 하셨다고 내게 이르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한동안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코로나 검사 문자가 오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 그날의 동선을 물어보지는 못했다.


  “인간은 존엄한 노년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서로 돌보는 유일한 존재다. 사냥의 능력을 상실한 야생 동물들은 그 순간 자연 속에서 소멸해 가지만 인간은 꺼져가는 생명을 향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끌어모아 온기를 나누려 한다. ‘휴머니티’라는 어휘가 담고 있는 가치란 바로 그런 것이리라.” (pp.149~151)


  여하튼 그 이후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2.5단계로 격상되었고 이번 주까지도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지 못했다. 어제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때 엄마는 몸살 기운이 있어 약을 먹었다고 하였고,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때 엄마는 입맛이 없어 큰일이라고 하였다. 입맛이 없는 엄마를 위해 사가지고 갈 수 있는 몇 가지 메뉴를 생각하였는데, 15킬로미터를 달리고 와서는 뻗어버리는 바람에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서야 전화를 다시 드렸다. 


  “2040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게 되며, 나 또한 살아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때쯤이면, 세상의 모든 아파트 단지에 공동의 식당과 함께 가꾸는 텃밭이 마련되어, 주민들이 돌아가며 함께 텃밭을 가꾸고 밥을 지으며 서로의 지혜와 생각을 나누고 부대끼는 틀이 마련되면 좋겠다. 그것은 점점 더 고독하게 늙어가는 인류를 위해서나 점점 더워지는 지구를 위해서도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p.160)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동생 내외와 식사를 하였다고 했다. 고미정이라는 한정식집에서 간장게장을 먹었다는데 배가 불러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먹지 못할 정도였다고 자랑을 하셨다. 사실 엄마는 종종 입맛이 없어 큰일일 때마다 장어나 회나 간장 게장을 드신다. 그러니까 엄마는 입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밥을 내가 지어서 먹기 싫은 것이다. 아내와 나 그리고 동생 내외는 엄마가 정말 입맛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나저나 다음 토요일부터는 식사 회동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목수정 / 밥상의 말 : 파리에서, 밥을 짓다 글을 지었다 / 책밥상 / 247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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