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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외 《나의 할머니에게》

알 수 없는 퇴화의 시작 지점에 점을 콕 찍고 기다리던...

by 우주에부는바람

고양이 용이는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부터 나의 할머니 같았다. 아내가 잠든 새벽녘이면 가만히 내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고는 했는데, 그 안에는 어떤 나무람보다 막연한 용인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고양이 용이가 어떤 용인보다는 막연한 나무람이 더 많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면 나는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 용이가 나를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그 눈빛의 자장 안에서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꼼짝도 못 하는 육체에 수감되는 형벌이라니...” (p.67, 백수린 <흑설탕 캔디> 중)


고양이 용이가 아니라면 내 기억에는 단 한 명의 할머니만이 있었다. 두 분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도 내가 기억하는 시간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나는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살고 계신 할머니만을 할머니로 알고 지냈다. 나와 동생들은 엄마의 손을 붙들고 방학 때면 할머니 댁을 향하곤 했다. 도시에 살던 우리로서는 꽤 고된 여정이었다.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익산으로 바뀌기 전, 그러니까 큰 폭발 사고가 있기 이전의 이리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김제로 혹은 부안 읍내로,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주산면에 도착하면, 또 그 어린 걸음으로 사십 여분 동안 산길을 또 걸어야 했다. 고개를 넘으면 논과 밭이 그리고 저기 눈 아래로 할머니 댁이 보였고, 할머니는 점처럼 동네 어귀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는 했다.


그 할머니는 낙상 사고 이후 서울의 우리 집으로 올라와 한두 해를 함께 했고 90년에 아흔 살로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동네 노인정으로 모시고, 다시 모셔 오고는 했다. 마지막 얼마간 할머니는 치매에 시달렸고 방 구석구석에 과자를 숨겨 놓고는 했다. 엉뚱한 이름으로 나를 부르기도 했는데,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작은 형님의 이름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벌써 삼십 여 년 전의 일이다.


“늙은 여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 오늘날에 도달했을 뿐이다. 가끔씩 민아는 자신의 20대를 떠올려본다. 그때 봤던 소설들, 영화들, 드라마에 나왔던 생기발랄한 주인공들과 나이가 같았을 대. 그땐 누가 봐도 민아가, 민아의 세대가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오늘의 다음 날은 두근거리는 미지의 내일이었다. 노년은 하물며 떠올려볼 수조차 없었다. 기껏해야 민아가 그릴 수 있는 먼 미래는 적당한 소음이 들려오는 평화로운 해변을 닮아 있었다. 그 안에서 민아는 젊음의 생기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누군가와 주름진 손을 다정히 맞잡은 채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오늘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것이어야 했다.” (p.199, 손원평 <아리아드네 정원> 중)


책은 할머니를 테마로 하는 기획 소설집이다. 책에는 윤성희 <어제 꾼 꿈>, 백수린 <흑설탕 캔디>, 강화길 <선베드>, 손보미 <위대한 유산>, 최은미 <11월행>, 손원평 <아리아드네 정원> 이렇게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소녀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과정, 그 어느 지점인가에 퇴화의 시작이 있을 터인데, 그것이 어디쯤인지를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고, 그 알 수 없음에 바쳐지는 소설들이다.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 나의 할머니에게 / 다산책방 / 239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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