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어떤 레트로의 감성으로 치닫게 되기도 하는...
「순간, 순간들」
“희순씨네 괘종시계 종소리가 골목 어귀까지 울린다. 일요일 오후 두시. 성당에서부터 남식씨는 걸음을 재촉한다. 종소리의 간격은 십 초, 남식씨의 걸음 속도는 그 십 초에 맞춰져 있다. 희순씨는 낮잠에 들었을 것이다. 남식씨는 파란 대문 앞에 이르러, 숨을 고른다. 늘 그렇듯이.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잘랐던 가지마다 싹이 돋아나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p.24) 팔십 중반의 노부부인 희순씨와 남식씨의 어떤 순간들이 별다른 맥락 없이 느닷 없이 펼쳐진다. 그 나이 때는 그렇게도 되는 것이다, 라는 이해가 가능한 나이가, 나도 되었다.
「너무 가까이 있다」
“... 어머니는 늘 그런 식이었다. 선택권을 늘 김에게 주었다. 언젠가부터 그것이 김을 괴롭혔다.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 곁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어머니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해왔다. 그러나 도쿄에서 깨달은 사실은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미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여머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반동의 연속. 삶은 절대적으로 어느 한쪽에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p.40) 김씨로도 곽씨로도 살 수 있었던, 김은 아직도 곽씨들의 자리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해야 한다.
「순정의 영역」
“감나무 집 네 갈래 골목의 한 귀퉁이, 파란 대문의 감나무 집에서는 하루 열두 번, 정시가 되면 어김없이 괘종이 울린다. 아무도 없는 거실 접이식 이 인상 위에는 성경과 백석 시집이 나란히 놓여 있다.” (p.66) 조금은 올드한, 그러나 레트로 감성이라고 해야 할지 읽다보면 옛 독서의 감상을 떠오르게 하는 문장들을 작가의 소설에서 종종 발견한다. 소설집에 실린 첫 번째 작품 <순간, 순간들>의 마지막 문장도 그렇고 이번 소설의 마지막 문장도 그렇다.
「용인」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그 죽음을 뒷바라지한다.’라는 문장에서 한동안 머문다. 그 다음으로 쉬이 넘어가지 않고 한참을 바라다본다. 여기서부터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소설들은 어떤 고장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스페인 여행」
“... 일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죽음을 기다리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엄마가 위중해졌따는 기별과 동시에 나는 대기 상태에 놓였다. 기다림으로 패닉 상태에 이르면 언덕을 내려와 식물원으로 내달렸다. 레바논 삼나무에 가는 것이었다. 나무는 두 팔로 안을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그 자리에서 사백 년 이상을 살아온 고목이었다. 사백 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헤아릴 수 없었다.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p.108) 소설에 잠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언급된다. 그러니까 <스페인 여행>에 스페인 여행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놀랄 필요는 없다.
「고원高原에서」
소설에는 위르굽이라는 동네가 등장하는데 구글링을 해보니 터키의 한 도시이다. 와인의 산지라고 나오는 것말고는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몇몇 블로그에서 그곳 동네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설의 끄트머리에 작은 사진이 한 장 인쇄되어 있다. 아마도 위르굽이겠지.
「해운대」
G는 해운대 초고층 빌딩의 뒷골목, 원래 쌀집인 터에 카페를 열었고, 그 안에 암실을 만든 다음 사진을 정리하거나 글을 쓴다. 어느 날 고양이인줄 알던 검은 물체가 맨발의 소녀라는 사실을 안 다음 그 소녀를 카페에 들였다. 그 소녀는 마치 고양이처럼 암실에 숨어 나오지 않다가 또 고양이처럼 쏜살같이 사라졌다.
「디트로이트」
두 명의 미국 이민자의 인생을 정리해주는 일을 하기 위한 미국행이었지만 데레사 김 할머니는 그만 숨을 놓아 포기하고, 한인 농장의 여길남 할머니를 찾아가기로 한다. 하지만 그사이 서울에서 디트로이트 취재 요청이 들어오고, 나는 파산 상태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불꽃 축제를 바라본다.
「몽소로」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 킬로미터 반경 안에 장 주네가 수감되어 있떤 퐁트브로 수도원 감옥이 있고, 이십 킬로미터 반경 안에 발자크가 태어나고 자라고 집필한 장소들이 있고, 삼십 킬로미터 반경 안에 미셸 푸코가 태어나고 묻힌 집과 무덤이 있는 것이었다. 모두 광기의 작가들이었다...” (pp.179~180) 그러니까 미인이 지금 머물고 있는 프랑스의 몽소로라는 고장은 이렇게만 설명될 수 있다.
「영도」
재인은 리스본에서의 인연으로 서울로 날아온 조아나와 함께 부산의 영도로 여행을 떠난다. “... 소설가 H는 소설가 K가 죽기 전 사 년간 부부로 살았다. 소설가 K의 죽음은 소설가 H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둘이 만났을 때에는 소설가 K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소설가 H의 위상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사 년 동안 소설가 K에게 필력도 문운도 집중됐다. 그 기간은 소설가 H가 임신을 하고, 육아를 하고, 소설쓰기와 에디터 업무에 복귀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녀의 복귀와 동시에 소설가 K가 암으로 사십사 일 만에, 눈 깜짝할 새에 죽었고, 소설가 H는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악전고투의 전장에 내동댕이쳐졌다...” 재인은 조아나를 통해 기주에게서 건네받은 USB에 등장하는 소설가 H의 이력이다. 그러니까 H는 함정임이고, K는 김소진일 터인데, H와 K가 기주와 조아나의 손을 거쳐 함정임의 소설 속 재인에게 도달한 셈이다.
함정임 / 사랑을 사랑하는 것 / 문학동네 / 245쪽 / 20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