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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김중혁 《무엇이든 쓰게 된다》

읽고 일 하고 쓰는 것으로 이루어진 삶의 트랙을 뱅글뱅글 돌다가...

*2020년 7월 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족저근막염으로 6주 정도를 쉬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것이 한달 전 쯤이다. 천천히 페이스를 올린 결과 드디어 어제 저녁 10킬로미터를 60분만에 뛰었다. 킬로미터 당 5분 30초에서 6분 30초 사이로 달린 결과이다. 내가 뛰지 않고 있을 때 아내는 동호회까지 가입하여 달렸다.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공식 훈련까지 참가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는 이제 10킬로미터쯤은 눈 감고도, 는 아니고 어쨌든 눈만 감지 않는다면 쉽게 나보다 더 빨리 뛴다. 

  “손톱이 길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손톱이 길면 누군가를 할퀴는 글을 쓸 것 같아서, 최대한 짧게 깎는다.” (p.19)

  뛰지 못할 때도 사이클과 수영은 쉬지 않았고, 지금도 조금씩 페이스를 올려가는 중이다. 사이클은 틈틈이 30킬로미터쯤 달리고, 어쩌다 40킬로미터를 타기도 한다. 평균 속도는 30킬로미터에 도달하지 못했다. 수영은 주말마다 하고 있는데, 아내의 폼을 실컷 보아주고 남는 시간에 다른 레인에서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가고 있다. 지난주에 800미터까지 헤엄쳤는데, 100미터에 2분 정도가 걸렸다. 그러니까 지금 1.5킬로미터를 헤엄친다면 30분 정도 소요될 것이다. 

  “글을 쓰고 있을 때보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뮤직비디오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책을 읽을 때, 만화를 볼 때,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문자로 찍히지 않을 뿐, 형태가 없는 글을 나는 이미 쓰고 있따. 엄밀한 의미에서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글이 될 수 있는 덩어리를 채취하는 것이다. 사금을 걸러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물과 모래를 얇은 접시에 담고 돌리다 보면 가벼운 모래와 흙은 휩쓸려가고, 묵직한 금만 접시에 남게 된다. 계속 돌려야 하는 거다. 계속 돌리면 거기에 글만 남게 된다.” (p.36)

  그렇게 수영과 사이클과 달리기를 이어 붙이면 철인3종이라는 운동 종목이 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대회가 열릴 것이고, 그러면 참가를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는 다르다고 하는데, 그 다름이 분명 긍정적인 방향은 아닐 것이고, 그에 대한 대비의 차원이기도 했다. 그러니 철인3종이라는 운동을 빙자한 무뢰한들에 의해 벌어진 폭력의 뉴스를 (그리고 스러진 이의 뉴스를) 볼 때마다 더욱 마음이 아프고 화가 치미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 영화든 문학이든 짧은 글쓰기이든 논문이든, 문단은 그 사람이 편집하고 싶은 세계의 단위다. 단어와 문장의 배열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지만, 문단을 나누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고민이 필요하다. 세상은 말처럼 쉽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고, 간단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p.95)

  그나저나 이렇게 길게 작성된 운동 이야기는 어쩌면 내가 내게 건네는 일종의 변명이다. 읽고 일 하고 쓰는 것으로 이루어진 삶의 트랙을 뱅글뱅글 도는 것이 내게 최적화된 라이프 사이클이었는데, 그 사이클에 운동이 조금 과도하게 끼어들은 결과, 읽고 일 하고 쓰는 것 중 쓰는 것이 조금 뒤로 밀리게 되었다는 변명을 하기 위하여 달리기와 수영과 사이클과 그것들이 합쳐진 철인3종까지 호출되었다. 

  “... 묘사는 객관적인 척하는 주관적 영역이다. 아무리 상세하게 묘사한다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을 도무지 알 수 없다.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세워둘 수 있을 뿐이다...” (p.256)

  그렇게 뒤로 밀린 쓰는 것, 을 독려하기 위하여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굉장한 제목을 가진) 김중혁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충분히 독려 받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쓰는 것과 관련한 엄청난 비밀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러나 이전에도 앞으로도 이처럼 재미있는 쓰기 책이 등장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데에 나의 수영과 사이클과 달리기를 걸어도 좋다. 그만큼 재미있다.

김중혁 / 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 위즈덤하우스 / 288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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