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5. 2024

이소영 《식물의 책》

너무 가까이에 있어 소홀하고 만 것들을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저는 식물세밀화를 그립니다. 제 작업은 어떤 식물을 그릴지 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이 정해지고 나면 이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이들은 어쩌다 숲에서 도시로 오게 되었는지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 식물에 관해 좀 더 알게 된 다음에, 직접 식물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서 형태를 관찰하길 반복해, 그림을 완성합니다.” (p.9)


  책에는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식물‘도 식물이지만 그것을 그린 ’세밀화가‘라는 부분도 무시하면 안 된다, 라고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식물세밀화‘라는 것을 잘 모르지만 보리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세밀화로 그린 동식물 도감들이 (아이들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찾아보니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도감 세트‘라는 것이 있는데 갖고 싶다.


  “제가 소나무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느꼈던 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희귀 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보다 오히려 근처 앞산의 소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어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도 늘 검토하고 되돌아봐야 하고요. 어쩌면 이건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관계에 있어서도 필요한 자세일 거예요.” (pp.57~58)


  어찌 보면 사진으로 찍으면 그만인 것을 어째서 그려야 하나, 싶지만 사람의 눈이 ’반복‘적으로 ’관찰‘한 결과물로서의 ’식물세밀화‘가 가지는 특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기의 렌즈라는 필터 대신 사람의 눈이라는 필터를 거친 결과물은 어쩌면 대상의 실제를 넘어 어떤 본질에 더욱 가까울 수도 있다. 작가가 매 챕터의 마지막에 식물을 보고 그리는 작업을 넘어서는 삶과의 밀착 포인트를 어떻게든 적어보고자 하는 노력, 같은 것이 그림에는 깃들어 있는 것이다.


  “계절이 변화할 때마다 식물의 잎도 그 빛깔을 바꿉니다. 봄에는 연한 연두색이었다가 여름이 되면 그 빛깔이 진해져 녹음을 자랑합니다. 잎이 초록색을 띠는 건 엽록소 때문이에요.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광합성량이 늘어나 엽록소 양이 많아지면서 잎의 빛깔이 진한 녹색이 되는 거고요. 그러다가 기온이 낮아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광합성량이 줄고, 나무가 엽록소 생산을 점점 멈추게 되면서 엽록소에 가려졌던 색소 분자들이 비로소 그 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빨간색이나 노란색, 주황색을 띠는 분자들, 안토시아닌이나 타닌, 카로티노이드, 크산토필 등으로 인해 잎의 빛깔이 바뀌죠. 그것이 바로 단풍이고요.” (p.177)


  사실 오래 전에 사서 책꽂이에 꽂아놓고 있던 책을 꺼내든 것은 불광천 라이딩 중에 발견되는 노란 꽃 때문이었다. 아내는 내게 그 꽃이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그것이 금계화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금계화가 있는 작은 언덕의 아래쪽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경계에 나 있는 흰색과 보라색의 꽃이 토끼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클로버라는 것도 나중에야 떠올랐다. 봄의 연두를 최고의 색으로 치는 아내와 함께 돌아다니며 바라본 지천의 나무니 꽃에 소흘했구나 싶어 또 잠시 집어든 책이 《식물의 책》이었다. 


  “... 식물을 재배할 때 가장 위험한 방식은 물을 조금씩 자주 주는 것입니다. 충분히 수분을 섭취했다는 것을 식물이 알 수 있을 만큼 물을 주는 게 좋아요...” (p.64)


  그런가하면 엄격하기 그지없는 남편과 사방팔방 자유롭기 그지없는 자식들 사이의 갈등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화초를 키우는 일로 달래던 엄마의, 이제는 화분을 들어 옮기는 것도 힘에 겨워 꽃을 포기했다는 최근의 한탄도 책을 집어 드는 데에 한몫 했다. 오래 전 젊었던 엄마는 짧은 가출을 감행하면서 혹여 우리가 남겨진 화초에 엉뚱한 짓을 할까 싶어 ’2틀에 한 번만‘ 물을 주라는 쪽지를 남긴 적이 있다.


  “은행나무는 1과 1속 1종입니다. 은행나무과 식물은 지구상에 딱 한 종밖에 없는 거죠. 식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은행나무는 바로 식별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에요. 유사종이 없기 때문에 헷갈릴 일이 없는 거죠. 하지만 그만큼 보호해야 할 나무이기도 하고요...” (pp.191~192)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식물들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깊숙하지는 않아도 매우 친근하게 소개되고, 세밀화들도 군데군데 포함되어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흔치 않아서 주목받기 보다는 흔하여서 더욱 사랑받아야 할 것들이 그 안에 있다. (지은이의 방식으로 덧붙이자면) 이는 식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우리는 너무 가까이에 있어 소홀하고 만 이들을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저마다의 이유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소영 / 식물의 책 / 책읽는수요일 / 287쪽 / 2019 (2019)

매거진의 이전글 김중혁 《무엇이든 쓰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