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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6. 2024

배명훈 《SF 작가입니다》

한국 문학의 장르 문학의 약세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2009년 작가의 연작 소설집 《타워》를 읽었을 때 꽤나 놀랐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를 그것도 매우 첨예한 문제들을 능수능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권력과 부패의 문제, 사회 비판의 기능의 문제, 계층간 혹은 계급간 갈등의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를 힘겹게 하는 디테일한 문제들을 특유의 상활 설정 안으로 끌어들여 천연덕스럽게 다루었다. 그것도 SF 장르의 자장 안에서...


  “SF는 상상하는 문학이다. 하지만 더는 신기한 아이디어로만 승부를 거는 문학은 아니다. SF에서 가치 있는 상상이란 다른 것과 동떨어진 재미있는 발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통합적 상상을 말한다. 그렇게 진화해왔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상상력을 통해 작가는 언젠가 현실이 될 세상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퍼즐처럼 이어 붙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설계도를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소설에서 ’세계‘란 작가가 묘사한 객관적 사물의 총합이라기보다는, 그 세계에 대한 작가 고유의 해석에 가깝다.” (pp.82~84)


  책은 바로 그 SF의 자장, 작가가 자신의 글을 통해 의탁하고 있는 그 공간 자체에 대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작가는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SF를 쓰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쓰게 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쓰는 글이 반쯤은 SF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이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이 그렇게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침입한 그 공간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학문하는 태도는 SF의 오랜 친구이자 유용한 도구다. 가끔은 그렇게 활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SF는 지식을 견주거나 팬덤에 새로 진입한 사람을 찍어 누르기 위해 쓰는 소설이 아니다. 일상과 직관을 넘어서는 지적 도구와 그로 인해 펼쳐진 세계의 또 다른 면모에 매료된 사람들이, 그 놀라운 감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어렵사리 꺼내든 도구. 그것이 바로 내가 아는 SF다.

그래서 SF는 실사구시의 문학이다.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 이례적인 앵글로 세상과 문명 세계를 비추기도 하는 지적 장치다. 모든 SF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SF 작가들은 이 장치를 통해 조망한 세계가 경이롭다고 말한다.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다.” (p.72)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학부에서는 외교학과를 전공하였고 대학원에서는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책에 실린 여러 글에서 자신의 이러한 공부 이력을 밝히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소설 쓰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특히나 서구로부터 이식된 SF라는 장르를 도구로 활용하는 데 있어 ’국제정치학 따위를 교양으로 쌓는 경험‘이 작가 자신에게 이롭게 작용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아직도 자신들이 작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더 심했고 지금은 확실히 덜하지만,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인 스스로 생각하는 나라의 크기가 더 작다는 것은 꽤 특이한 현상이다. 크기에 대한 인식보다 더 신기한 점은, 자신들이 세상의 한쪽 구석에 놓여 있다는 식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다. 특히나 한국인이 세상의 변화에 앞장서는 이야기를 어색하게 여기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자랑스러워하는 경향은, 한국 작가가 SF를 쓰는 데 방해가 되는 문화적 특징이다. 양쪽 모두 주인공의 자리가 한국인의 몫은 아니라고 여기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p.24)


  ’작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경향을 읽고 있자니 이번 코로나 정국의 우리가 떠올려진다. 어느 외국의 기사를 인용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은 자신들이 이미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던가. 여하튼 작가는 이분법적 나누기 도구를 사용한다면 진보 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명박 정권 시기에 나온 작가의 《총통 각하》를 갑갑한 가운데에서 후련하게 읽은 적이 있다.


  “...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이고 선량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한편,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부지런히 점검해서 적기에 정교한 입장을 낼 준비를 하는 일이다. 물론 가능하면 실제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 위선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되어버린 자기 이름을 정기적으로 검색하는 일의 실상은 사실 이런 것들이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자꾸만 인터넷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 언뜻 자기애와 유사해 보이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p.213)


  사실 SF 작가가 보수적이기는 쉽지 않을 터, 각종 사회 문제를 향한 작가의 의식적인 접근에는 멈춤이 없다. 다만 하나의 소설에서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SF 장르의 특성상 그렇게 구축된 소설 속 작가의 세계가 언제나 흥미롭고 완전한 것만은 아니어서 최근의 소설들에서는 최초의 것만큼 큰 재미를 읽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문학이 가지는 장르 문학의 약세라는 약점을 보완하는 작가를 향한 기대를 멈추지는 못하겠다.



배명훈 / SF 작가입니다 : 딴 세상 사람의 이 세상 이야기 / 문학과지성사 / 266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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