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피 《더 패치...》

문외한까지를 끌어당기지는 못할 지언정 '굴하지 않고'...

by 우주에부는바람

연희동과 홍은동을 잇는 작은 다리 홍연교에서 시작된 라이딩은 계속 한강 하류를 향하다 가양대교에서 멈췄다. 보수 작업을 위해 한꺼풀 벗겨낸 도로를 달리는 것이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내 허벅지에는 왼팔의 화상 상처에 이식하기 위해 피부를 벗겨낸 흔적이 있는데, 보수 중인 도로를 달리는 동안 허벅지의 진동이 심했다. 한강의 상류로 방향을 고쳐잡고 달리는 동안 한강에 있는 세 개의 섬, 선유도와 한강밤섬과 노들섬을 지났다.


“가끔씩 작은강꼬치고기가 수면 가까운 곳을 서성거릴 때, 놈은 우리가 던진 움직이는 미끼를 멀리서 지켜본다. 그러다 잔물결의 흔적을 수면에 아로새기며 어뢰처럼 빠르게 그쪽으로, 우리를 향해 온다. 우리의 욕망을 영원토록 불러일으키는 데는 딱 그 한 장면이면 충분하다. 뉴햄프셔 섬에 있는 개수로 건너편에는 끄트머리가 날카로운 수련 잎이 400미터가량 놓여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그곳을 그냥 수련 서식지a patch가 아니라 더 패치The Patch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만에 있는 수련들을 살펴보고 그곳에서 낚시를 해봤지만, 결국에는 항상 더 패치로 돌아왔다...” (p.23)


오늘 오후에 자전거로 내달리는 동안 거쳐 간 장소와 젊은 여인과 부딪칠 뻔한 초로의 사내가 버럭 화를 내거나 남자는 블랙으로 여자는 화이트로 멋지게 차려입은 라이더가 쏜살같이 나를 앞질러 간 장면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존 맥피의 손을 거친다면 이 또한 지면을 채울만한 글이 될 터인데, 그의 손을 거치는 동안 a patch는 The Patch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영화 촬영장에서, 세트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는 너무나 심란했던 그는 제작을 중단시키고는 집으로 가서, 집에 있는 컬렉션에서 더 나은 그림들을 갖고 돌아왔다. 그는 “1000개의 디테일이 합쳐져 하나의 인상을 만드는 갑니다”라고 설명했다.』 (p.151)


해제에 따르면 (저널리스트 로버트 보인턴을 인용한 결과) 존 맥피는 1960년대 뉴저널리즘(톰 울프, 트루먼 커포티, 노먼 메일러가 속한)의 다음 세대인 뉴뉴저널리즘의 대부라 평해진다. 존 맥피는 ‘덜 특별한 이들의 일상에 주목’하고 ‘현란한 수사나 문학적 비유보다 팩트들의 배치’를 통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고자’한 뉴뉴저널리즘의 ‘선봉’에 선 작가로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워싱턴에 그 도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아는 친구가 있다. 그의 이름은 H. M. 레메오가 아니지만, 아무튼 그게 그의 이름이라고 치자. 그는 문서에 서명하는 데 쓸 펜을 대통령들에게 제공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D.C. 로펌들의 중역 회의에 오래전부터 녹아들어간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로펌들은 정부하고는 구체적인 연줄이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내뿜는 아우라 안에서 활동한다. 레메오의 워싱턴은 캐피털 시티 투어Capital City Tours로 구경하는 워싱턴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언젠가 그는 워싱턴 전화교환소의 카세트 보관소를 내게 구경시켜줬다. 그는 메릴랜드 교외의 구릉지에 거주한다. 대충 이 정도 묘사하는 수준에만 머물러야 할 그 지역에서, 어느 가을날에 그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던 중이었다...” (p.171)


그리고 또 하나, 작가는 위와 같이 건조한 유머를 종종 구사하는데, 이것이 뉴뉴저널리즘의 소산인 것인지 아니면 존 맥피 개인의 취향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뉴뉴저널리즘이 지향하는, 기사 아니면 작품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기사인 듯 작품인 듯 혹은 기사라고도 작품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어떤 작품을 대중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하나의 방편으로 이런 유머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업 작가란, 정의하자면, 극기라는 옷을 걸치고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정신과 영혼에 얼마나 가혹한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유창하게 한탄하고, 무엇이 되었든 집안일이라도 생길라치면 ‘작업 기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고, 해쓱한 시인처럼 구슬픈 얼굴로, 두려움 가득한 작업실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한가한 인간들에게 자신은 이만 가보겠다고 말하고, 글쓰기의 성소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빗장을 채우고, 그 고독한 희생 속에서, 뉴욕 매츠의 야구 경기에 빠져드는 사람이다.” (p.211)


사실 책을 읽는 동안 책장에 끼우고 있는 손가락을 계속 꼬물꼬물 거렸다. 그저 빨리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서였다. 그러니까 굉장히 지루했다는 이야기이다. 낚시며 미식축구며 골프 이야기는 문외한인 내게는 너무 멀다. 라크로스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리뷰를 쓰려고 떼어낸 몇 개의 문단을 보니 그렇게 재미없기만 한 글은 아니었나, 라는 의구심이 든다. 마침 《네 번째 원고》라는 새 책이 얼마 전 출간되었다.



존 맥피 John McPhee / 윤철희 역 / 더 패치 : 두려움 가득한 작업실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The Patch) / 마음산책 / 400쪽 / 20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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