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홀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안달을 하기도 그렇고 안심을 하기도 그래서 그저 달리는데 그마저도...

by 우주에부는바람

*2020년 4월 2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 요리를 해 먹지 못하고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홀아비용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운다. 손가락의 움직임도 둔하고 옷의 단추를 끼우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린다... 이번 겨울부터 나는 머리에 뒤집어써서 입는 셔츠를 착용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전했지만 80세가 되던 해 두 차례 교통사고를 냈다. 누군가가 내 차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기기 전에 운전을 그만두었다. 가게나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누군가가 나를 태워주어야 한다... 나는 내 몫의 원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노년이란 연속적인 상실의 통과의례다. 마흔일곱 살이나 쉰두 살에 죽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그게 더 바람직하다. 탄식하고 우울해해 봤자 좋아지는 건 없다. 종일 창가에 앉아 새와 헛간과 꽃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편이 더 낫다. 나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기쁨이다.” (pp.13~14)


한 달 전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트니스 센터가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아내는 가장 먼저 문틀에 설치할 풀업 바와 상체 근력 운동을 위한 기구를 주문했다. 나도 이에 질세라 튜빙 밴드를 구매했지만 나와 아내는 그것들을 문 앞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채로 불광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첫날 나는 중간에 포기한 아내를 뒤로 한 채 5 킬로미터를 달렸고, 그 주의 다른 날에는 8.5 킬로미터를 달렸다. 그리고 무릎에 탈이 났다.


“나는 평생 노인을 사랑하며 살았고 이제 자연법칙에 따라 내 자신이 노인이 되었다. 세월은 10년씩 흘러갔다. 서른 살은 겁나는 나이였고 마흔 상리 되던 날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눈치채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50대가 최고였는데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60대가 되자 50대의 행복이 연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암에 걸렸고 아내가 죽었다. 그 후의 여러 해를 돌아보면 마치 다른 우주로 여행을 온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해도, 별수 없다. 노령이라는 세계는 미지의 우주이자 뜻밖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낯선 것이고 노인들은 별개의 생명체다... 우리는 여든 살이 되면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잠시라도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반드시 깨우침이 온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바로 느끼는 것이다...” (p.18)


무릎에 탈이 나고, 아내에게 혼이 난 다음 우리는 3 킬로미터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월요일과 수요일에 3 킬로미터를 달리고 금요일에 1 킬로미터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 사이 동생의 장인어른이 로드 바이크를 내게 넘겼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자전거로 25 킬로미터를 달렸다. 홍제천의 상류에서 시작하여 행주산성의 유명 국숫집을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돌아오는 루트였다.


“에세이는 천국과도 손을 잡고 지옥하고도 악수를 한다. 이점에서는 시나 이야기나 소설과 다르지 않다. 삶을 이루는 세포의 구조가 모순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어떨 때는 북쪽이 지배하고, 어떨 때는 남쪽이 장악한다. (에세이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순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글은 망한 것이다.)...” (p.30)


조금씩 늘려 6 킬로미터를 달린 지난 주 금요일 저녁에 왼쪽 무릎에 다시 통증이 일었다. 주말에 따릉이를 타고 수영장에 다녀오며 살살 몸을 달래고 이번 주 월요일에 다시 한 번 6 킬로미터를 달렸다. 나중에 기록을 확인해보니 지금까지 달린 것 중 가장 빠른 속도였다. 나는 달리는 내내 무릎에 체중이 실리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마지막 1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오른쪽 발뒤꿈치에 통증을 느꼈다.


『캐럴은 내 친구 중 유일하게 담배를 피운다. 그녀가 찾아오면 우리는 마주 앉아 맞담배를 하면서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 차를 운전하거나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던 중에 어떻게 해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시게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때의 흡연은 아마 뭐라도 하고 있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것이 자위 대신일까? 흡연이 주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 둘 다 동의한다. 우리가 숨을 쉴 수 없게 되었을 때 “왜 나죠? 하고 물을 일은 없을 것이다.” (p.110)


발뒤꿈치의 통증에 대해 뒤져보았고 족저근막염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병원에는 가지 않았고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동안 수요일이 되었다. 달리기에 흠뻑 빠진 아내가 6 킬로미터를 뛰도록 한 뒤에 3 킬로미터를 걸었다. 걷는 동안 내 옆을 훅훅 뛰어서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있었고, 조금 슬퍼지려는 것을 참으며 팔과 다리를 재게 놀렸다. 한강 가까이 뛰어갔다 돌아와 3 킬로미터 지점에서 만난 아내가, 걸어서도 꽤 많이 왔네, 라고 말해주었다.


“죽음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린 것은 70대의 어느 지점부터였다. 부고 기사에서 사망자의 나이를 더 이상 체크하지 않게 됐다. 이전에는 만약 내가 쉰한 살인데 죽은 사람이 쉰 세 살이면 잠시 염려가 됐었다. 죽은 이가 쉰한 살이고 내가 쉰세 살이면 안심이 됐다. 사람이 아주 오래 살면 가족 중에 제일 연장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 밤이 밀려오는 시각 언덕 꼭대기에 혼자 걸터앉아 있는 것이다...” (p.150)


나보다 두 살 어린 아내는 올해 드디어 오십대가 되었다. 늙는 것에 대해 말하는 대신 우리는 자꾸 밖으로 나가고 있다. 토요일 저녁이면 나와 아내는 팔십 세를 한 해 앞두고 있는 나의 동갑내기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한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은 미국의 작가 도널드 홀이 팔십 세를 넘은 다음에 쓴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그래서 원제는 ‘Essays After Eighty’이다. 그는 2018년 만 89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 내가 균형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을 걱정한다. 일어나고 앉는 게 힘들어지는 걸 걱정한다. 어제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아서 잠드는 사람이 아니다...” (p.198)



도널드 홀 Donald Hall / 조현욱, 최희봉 역 /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여든 이후에 쓴 시인의 에세이 (Essays After Eighty) / 동아시아 / 239쪽 / 20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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