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 《사서(四書)》

경직된 사상이 무오류의 인간이라는 스피커로 전파될 때의 필연적인 비극..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에 등장하는 사서四書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이 아니라 『하늘의 아이』, 『옛길』, 『죄인록』, 『시시포스의 신화』이다. 이중 『옛길』과 『죄인록』은 ‘작가’라고 불리우는 이가 작성한 것으로 『죄인록』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일종의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고자질하기 위한 공식 문서이고, 『옛길』은 같은 ‘작가’가 공식 문서를 작성하고 남은 시간에 도구를 이용해 작성한 비공식 문서이다.


“산의 한편에서 시시포스는 서양의 시시포스였다.

산의 다른 한편에서 시시포스는 동양의 시시포스였다.” (p.533)


그런가하면 『하늘의 아이』는 구술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작자미상에 가깝고, 『시시포스의 신화』는 ‘작가’와 같은 수용소에 있었던 ‘학자’의 출판되지 못한 원고인데, 이러한 사실 또한 ‘작가’의 글을 통해 확인된다. 소설은 이러한 사서四書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소설 전체가 사서四書(우리가 알고 있는 사서가 아니라 작가가 ‘작가’의 글을 통해 만들어낸)라고 할 수 있다.


“상부에서 내게 『죄인록』을 쓰라고 요구했다.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99구 동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기록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조속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어떤 단락은 서랍에 남기고 어떤 단락은 제출했다. 제출한 것은 교화로 인한 공적이자 충성심의 발현이었고, 남긴 것은 교화 과정이 끝난 뒤 쓸 소설의 소재이자 기록이었다. 나는 작가의 생명과 그의 작품 생명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판가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난 글을 쓸 수 있었다...” (pp.49~50)


소설은 ‘작가’를 비롯해 ‘종교’, ‘학자’, ‘음악’, ‘실험’ 등 이름이 아닌 일종의 직업군 분류로 불리우는 인물을 통해 진행된다. 이들은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이들이지만, 현재는 ‘아이’의 지도 하에 정해진 책들만 읽을 수 있고 목표 완수를 위한 노동에 매진하는 것으로 일상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사상개조운동을 목적으로 지식인들이 내려간 농촌의 노동교화소일 것이고 ‘아이’는 극좌 사상으로 무장한 홍위병의 일원인 청년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 작은 꽃 다섯 송이를 중간 꽃 한 송이로 바꾸고, 중 꽃 다섯 송이를 큰 별 하나로 바꿔 별 다섯 개를 모으면 위신구를 더나 자유의 몸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다. 별 다섯 개를 모으려면 중간 꽃 스물다섯 송이나 작은 꽃 125송이를 모아야만 했다...” (pp.125~126)


소설은 문화대혁명 그리고 그 이전의 대약진운동 시기를 다루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대약진운동 시기의(1958년부터 1962년) 무리한 증산 운동과 그로인한 대기근(4000만 명의 아사자를 발생시킨)이 있고, 이러한 정책의 실패에 대한 반격으로 마오쩌뚱이 취한 문화대혁명이(1966년부터 1976년) 있었지만 소설은 이를 하나의 시기에 포개놓았다. 무수한 인민의 죽음을 담보로 진행되었던 두 개의 거대한 시행착오가 원인과 결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강철 제련은 전국이 떠들썩했던 일입니다. 거국적 운동이었지요. 모두들 강철을 만든다면서 산과 강변, 마을 입구의 나무란 나무는 전부 베었습니다. 나무를 전부 베어냈으니 홍수가 나지 않을 수 없고 가뭄이 들지 않을 수 없지요. 홍수와 가뭄이 겹쳤으니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지금 1인당 식량을 매일 두 냥씩 받고 있지만 올겨울이면 그 두냥도 끝날 겁니다. 우리가 죽든 살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겁니다...” (p.369)


마오쩌뚱의 오류로 가득한 두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니만큼 《사서四書》는 자국의 출판사에서는 출판을 거부당하였다. (극좌가 되었든 극우가 되었든) 어느 한 쪽으로 심하게 경도된 사상이 갖게 되는 경직성, 그 경직성이 무오류의 인간이라고 칭해지는 슈퍼스타의 스피커를 통해 전파될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비극을 다루고 있는 소설인데, 그 소설이 별 수 없이 철저한 은유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데에 또 다른 아이러니가 있다.



옌롄커 閻連科 / 문현선 역 / 사서 (四書) / 자음과모음 / 538쪽 / 20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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