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종교와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덧칠되어 있는 신생국의 출입문을 열고
프란시스코 다 가마와 에피화니아 메네제스가 아이리쉬 다 가마와 까몽쉬 다 가마를 낳았고, 까몽쉬 다 가마와 이사벨라 수자가 결혼하여 오로라 다 가마를 낳았고, 오로라 다 가마와 아브라함 조호비가 결혼하여 이나, 미니, 마이나라는 세 딸과 아들인 모라에스 조호비, 일명 ‘무어’를 낳았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 다 가마 집안의 4대에 대한 내력 그리고 무어의 아버지인 조호비 집안의 2대와도 얽혀 있는 이야기를 집대성하고 있다.
“새 세상이 열려, 벨. 자유로운 나라가 세워진단 말이야. 백성과 함께하기에 종교보다 고귀한 나라, 사회주의로 다스리기에 계급을 초월하는 나라, 무지와 미신을 탈피했기에 카스트 계급을 넘어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증오를 이길 수 있는 나라, 용서할 줄 알기에 앙갚음하지 않는 나라, 하나가 되었기에 종족 차별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알기에 언어를 초월한 나라, 모든 인종이 다 함께 살기에 피부색도 초월한 나라, 가난과 싸워 이겼기에 궁핍이 두렵지 않은 나라, 읽고 쓸 줄 알기에 무지를 뛰어넘은 나라, 영리하기에 어리석음을 이긴 나라. 자유야, 벨. 자유가 급행열차처럼 달려와. 곧, 곧 우린 플랫폼에 나가 자유 급행이 들어오는 걸 환호하게 될 거야.” (pp.82~83, 상권)
소설의 배경은 인도이다. 아직 영국의 식민지배를 벗어나기 이전의 시대에서 시작된 소설은 간디와 네루로 대표되는 치열한 독립 시절을 거치며 진행된다. 하지만 작가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나 시니컬하다. 소설의 서술자인 무어의 할아버지인 까몽쉬 다 가마가 바라마지 않았던 이상향의 인도를 향한 꿈은 이후 소설의 진행을 통해 여지없이 파괴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일곱 살 반이 되자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해지고, 목에는 인후가 튀어나왔다. 목소리는 중후한 저음으로 변해갔고, 완전한 남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성욕까지 생겨났다. 열 살이 되자 나는 6피트 6인치에 스물한 살의 장정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이 자의식의 초기 단계에서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속도의 저주를 받은 나는 론 레인저가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하듯 느릿느릿함을 위장했다. 굼뜬 성격으로 성장의 속도를 늦춰보리라는 결심 아래 몸은 점점 둔해졌고, 그렇게 하품하듯 늘어지는 육체에 장단을 맞추듯, 말도 기지개처럼 느리게 나왔다...” (p.224, 상권)
그런가하면 다 가마라는 성씨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들은 서유럽에서 인도로 넘어온 이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다 가마 집안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도이다.) 또한 ‘무어’라는 호칭에서 연상할 수 있듯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그라나다에 둥지를 틀었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어의 아버지인 조호비는 유대교 집안 출신이다.) 소설에는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왑딜에게 그 엄마가 말한 “여자처럼 울 수도 있겠지, 남자답게 싸워서 지키지 못했으니까.” 라는 문구가 여러 차례 인용된다.
“봄베이는 중심이었다. 처음 생길 때부터 그랬따. 포르투갈과 영국의 피가 반반 섞인 사생아, 하지만 그러면서도 봄베이는 인도 중에서도 가장 인도다운 도시였다. 봄베이에서는 인도의 모든 것이 만나고 또 합쳐진다. 봄베이에서는 온 인도가 인도 아닌 것들과 만난다. 검은 물을 건너 우리의 핏줄로 흘러들어온 것들. 봄베이 북쪽에 있는 건 모두 북인도였고, 남쪽에 있는 건 모두 남부였다. 동쪽으로는 인도 동부가, 서쪽으로는 서양이 있었다. 봄베이는 중심이었다. 모든 강줄기가 인간의 바다 봄베이로 흘러들었다. 봄베이란 건 이야기의 대양 같았다. 모두가 봄베이 이야기의 화자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p.200, 하권)
소설은 인도, 그 중에서도 봄베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도 한데, 한때 그곳이 용광로 같이 모든 것을 흡수하여 새로운 것을 토해내는 이상향 같은 도시로 회고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독립과 그 유지를 위한 타협이 불러온 극단적 힌두주의의 득세가 만들어버린 변태적인 상황은 곧바로 무어에게 이입된다. (인도의 현재와 힌두 근본주의라는 주제는 최근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지복의 성자》에서도 다뤄졌다.)
“... 오로라 다 가마 조호비, 1924-1987. 그 숫자들 아래 그녀는 바다에 잠긴 양 영원히 닫히고 말았다... 이젤 위에 남아 있던 그림은 나에 대한 그림이었다. 그 마지막 작품 「무어의 마지막 한숨」에서 그녀는 무어에게 인간성을 돌려주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어수선한 어릿광대도, 쓰레기 콜라주도 아니었다. 그건 그녀 아들의 초상화였다. 방랑의 그늘 마냥 지옥의 변방을 헤매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지옥에 갇힌 영혼의 초상화였다. 그의 뒤에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더 이상 두 폭으로 분리된 화폭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통당하는 술탄의 모습과 함께 다시 하나가 되어 있었다...” (p.153, 하권)
직전에 읽은 살만 루슈디의 소설인 《한밤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무어의 마지막 한숨》 또한 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밤의 아이들》이 독립이 이루어진 바로 그 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무어의 마지막 한숨》은 그 이후에 더 집중하고 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형식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전한데, 아마도 다양한 종교와 문화, 역사적 배경이 덧칠되어 있는 신생 국가의 출입문을 열고 지나가는데 유효한 방식이 아닌가 싶다.
살만 루시디 (살만 루슈디) Salman Rushdie / 오승아 역 / 무어의 마지막 한숨 (The Moor’s Last Sigh) / 문학세계사 / 전2권 상권 313쪽, 하권 328쪽 / 1996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