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시아마 감독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각성해가는 에우리디케를 향하는 섬세한 카메라 워킹...

by 우주에부는바람


영화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가 살고 있는 섬을 향하는 화가 마리안느의 회상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은 배를 타고 그곳을 향하던 마리안느는 캔버스가 물에 빠지자 지체 없이 바다에 뛰어든다. 엘로이즈가 살고 있는 저택에 도착한 마리안느는 하녀인 소피의 도움을 받아 불 앞에 캔버스와 자신을 내려놓는다. 화가인 마리안느에게는 화가인 아버지의 후광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겠지만 그것은 아직 발견 전이다.


엘로이즈의 엄마는 딸을 이탈리아로 시집 보내기 위해 초상화가 필요하고, 여성인 마리안느를 산책 친구로 삼아 몰래 딸의 초상화를 그릴 작정이다. 엘로이즈의 언니는 결혼을 거부하며 목숨을 끊었고, 엘로이즈는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다시 소환되어 돌아온 상태이다. 엘로이즈 또한 결혼을 원하지 않지만 마리안느는 그녀의 결혼을 독려하는 초상화 그리기에 열중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하지만 그 응시는 곧바로 조우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초상화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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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마땅치 않아 한다. 마리안느는 그런 엘로이즈를 향하여 스스로를 변명한다. “그림에는 규칙과 관습, 이념이 있어요.” 엘로이즈는 되묻고 “생명력은 없나요? 존재감도?”, 마리안느는 다시 한 번 방어한다. “존재감이란 그저 진실되지 않은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엘로이즈는 물러서지 않고, “그렇지 않아요. 어떤 감정들은 아주 깊어요.”, 어쩌면 그 순간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사이의 내벽은 무너져 내린다.


마리안느가 초상화를 다시 그리기로 하고, 엘로이즈의 엄마가 섬을 떠나 있는 동안에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이 진행되고,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와 소피의 연대가 형성된다. 낙태와 동성애, 가부장제와 신분제 등의 다양한 이슈들이 섬세한 카메라 워킹의 사이사이로 흘러 넘친다. 그리고 섬을 떠나기 위해 마리안느를 향해 뒤를 돌아보라고 외치는 엘로이즈에게서 우리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각성한 에우리디케를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각성된 에우리디케는 전시회의 화가로, 연주회장의 눈물 흘리는 청취자로 마리안느를 여전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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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는 여인의 초상>은 이안 감독이 연출하고 히스 레저가 출연한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레아 세이두가 연기를 보탠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을 연상시킨다. 레아 세이두나 히스 레저의 자리에 아델 에넬을 두고 싶어 진다. 루아나 비아마가 연기한 소피의 존재가 묘하게 두 영화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구별짓기도 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on Fire) / 셀린 시아마 감독 / 아델 에넬, 노에미 메를랑, 루아나 바야미 출연 / 121분 / 20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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