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거대한 화합의 포토 여행이랄까...
영화에 등장하는 아녜스 바르다는 1928년생이다. 지금 우리 나이로 아흔한 살이다. 영화가 촬영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이니 당시에는 아마도 팔십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얼마전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노인의 일기》의 노인이 일흔일곱 살이었다. 그 노인이 십사 년을 더 살아야 아녜스 바르다의 나이가 된다.) 그리고 아녜스 바르다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영화 감독이다.
구글에서 아녜스 바르다를 검색하면 젊은 시절의 아녜스 바르다를 확인할 수 있다. 아녜스 바르다는 장 뤽 고다르 등과 함께, 1960년대를 전후하여 프랑스에서 발생한 일종의 영화 사조라고 할 수 있는 누벨 바그 운동을 하였으니 그야말로 유구한 현재형의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런 연유로 영화 속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장 뤽 고다르를 찾아가고, 아녜스 바르다의 남편인 자크 데미 (<쉘부르의 우산>의 감독이다) 또한 누벨 바그의 일원이었다.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가 삼십 대의 젊은 사진작가인 제이알(본명은 장 르네이지만 약칭으로 JR을 사용하는 사진작가 겸 그래피티 아티스트이다)과 함께 하는 포토 여행이다.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쳤던 두 사람이지만 결국은 함께 여정을 꾸려간다. 그들이 길이나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얼굴들도 어쩌면 그렇다. 예정된 만남은 아니지만 만나고 나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제이알이 몰고 다니는 포토 트럭은 그 자체로 하나의 행위 예술이다. 길에서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포토 트럭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곧바로 출력된 거대한 사진은 그 마을의 어느 지점에 부착된다. 거대한 사진과 그 사진이 부착된 공간은 평면의 예술인 사진에 또다른 입체감을 부여한다. 두 사람이 찍는 사진은 현실을 사각의 프레임으로 고착화시키는 대신, 프레임 안의 것들을 현실에게로 되돌려 놓는다.
영화는 간결하다. 오십살이 넘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티격태격 농담을 주고받기를 서슴지 않는 아녜스 바르다와 제이알은 어딘가에 도착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찍고 출력된 사진을 어딘가에 붙이고 그 앞에서 지금까지의 행위를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얼마 후 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영화는 간결하지만 단순하지는 않다. 두 사람은 의미 없어 보이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의미가 있는 공간의 잊혀져가는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키기도 한다. 현재의 것과 과거의 것은 절묘하게 합쳐지고, 정적인 결과물인 사진은 동적인 결과물인 영화와 무람없이 어울린다. 그리고 장 뤽 고다르가 남겨 놓은 메모에 실망한 아녜스 바르다를 달래기 위해 제이알이 드디어 선글라스를 벗을 때, 우리는 두 사람의 우정을 실감한다.
아녜스 바르다, 제이알 감독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Visages, Villages) / 93분 / 2018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