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안도가 클라인씨의 병처럼 외롭거나 외롭지 않게...
*2018년 11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새벽 꾸준히 희미해져가는 고양이 용이를 옆에 두고 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봤다. 나는 한동안 고양이를 쓰다듬었고, 고양이는 오르락내리락 숨을 보여 주었는데, 그렇게 쓰다듬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얀 천에 둘러싸인, 검은 눈구멍만 있는 고스트가 된 C가 초원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 C의 남겨진 연인 M이 파이 한 판을 모두 먹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영화 속 그와 그녀를 애도하면서 내내 안도하였다.
“책을 쓰더라도 그 책은 언젠가 타버려요. 노래를 부르며 후세에 전하고 희곡을 쓰고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계속 공연하고 멋진 집을 지어도 결국엔 부질없어요.”
영화의 초반부에 보여지던 그와 그녀의 친밀함, 심리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간극을 찾아볼 수 없는 화면들이 느리게 흘러가고 나면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등장한다. 그녀는 영안실에서 그를 확인하고, 그녀는 떠나고, 그는 하얀 시트채로 일어난다. 어쩌면 하나의 기회, 문이 열리지만 그는 그대로 걷기 시작한다. 초원을 지나고 집에 도착한 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그를 잃었고, 이제 그는 그를 잃은 그녀 곁에 있다.
<고스트 스토리>를 보는 동안 끊임없이 이색적인 체험을 한다. 고스트가 된 C는 눈의 자리에 구멍이 뚫린 흰 천에 둘러 싸여 있다. 그런데 그 흰 천의 감각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창백한 여운에 깊이 감응한다. 천이 돌아보아 생기는 주름, 천이 앉아서 생기는 주름을 통해 견딤을 감각하고 시간을 감각한다. 지극히 추상적인 감각들이 그 하얀 천의 물성에 고스란히 깃든다.
많은 이들이 그 흰 천의 연기력에 감탄한 것인지, 그 흰 천 속의 그가 C를 연기한 케이시 에플렉인지를 궁금해 한다. 사실 이건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하고 있다는 사실의 에둘러진 표현일 뿐이다. 그렇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천에는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심장에도 흰 천이 휘감긴다. 희미해지지만 모호해지는 대신 뚜렷해지는 것들이 있다.
“거기서 무얼 하나요?”
“누굴 기다리고 있어요.”
“누굴?”
“기억이 안 나요.”
영원한 시간을 살아야 할 것만 같은 고스트 C, 옆집의 또 다른 고스트, 돌아오지 않을 건가 봐요, 라고 말하는 순간 사라지는 옆집의 고스트, 문틀에 남겨진 쪽지를 드디어 꺼내 읽고 나서 사라지는 고스트 C, M이 집을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고스트, 새로운 사람들이 살게 된 뒤에도 남아 있는 고스트,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떠나보낸 뒤에도 남아 있는 고스트, 집이 부서진 뒤에도 남아 있는 고스트, 빌딩이 들어선 뒤에도 남아 있는 고스트,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고스트, C와 M의 과거와 겹쳐진 뒤에도 남아 있는 고스트...
고스트의 감각, 고스트가 바라보는 것과 고스트가 느끼는 것들의 자리를 계속해서 채워간다. 영화에는 공간과 소리 그리고 나서야 인물이 있는데, 그 인물조차 흰 색 천으로 가려져 있다.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1.33:1의 화면은 우리가 응시하는 동안 상실하고 추억하고 떠돌고 기억하며 히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결코 알려주지 않는, 그녀가 문틀의 틈에 꽂아 놓은 종이쪽지를 숨겨 놓은 채로 현재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과거로,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다. 뫼비우스의 띠가 아니라 클라인 씨의 병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사라진 뒤의 세상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세상 역시 사라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영화를 보는 동안 감각과 의식의 조율을 경험한다. 부족한 시각의 영역을 청각이 확장시키고, 부단히도 감응하는 청각과 시각이 의식의 개폐를 조장한다. 애도와 안도가 교차하는 동안 외롭거나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된다.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가 아니라 그 무언가의 입장에 곧바로 선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어려운 것을 감독이 해냈다. 영화가 끝나고, 고양이 용이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모든 죽음을 감춰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닐지도 모르므로...
고스트 스토리 (A Ghost Story) / 데이빗 로워리 감독 /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출연 / 92분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