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김이 없이 계속되는 롱 테이크의 문체로 이어지는...
「말 좀 끊지 말아줄래?」
“... 소년이 복도 끝을 향해 뛰었다. 복도 끝은 왼쪽으로 꺽어져 다른 복도로 연결되었다. 맞은편에서 모퉁이를 돌아나온 우씨, 이씨가 달려오는 소년을 피하려고 몸을 살짝 비틀었다. 멈칫거리던 소년이 모퉁이를 돌아나가자 우씨의 발밑에서 검은 그림자가 쑥 빠져나갔다. 우씨는 휘청거리다가 몸의 중심을 잡고 이씨를 따라 걸었다.” (pp.9~10) 최정나의 소설을 읽다보면 페이드 인이나 페이드 아웃이 없는 롱 테이크를 연상하게 된다. 소설이 마치 끊김이 없이 계속 연결되는 장면 그리고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주인공과 여타의 인물이라는 일반적인 구분에서 벗어난 형식도 눈에 띈다.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오빠와 여동생이 각각의 배우자와 함께 골프를 치러 가고, 골프를 친다. 재산을 남겨 놓고 떠난 아버지와 병이 든 채 남겨진 어머니를 향해 남매와 그 배우자들이 이런저런 말을 보탠다.
「사적 하루」
“종은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고는 서둘러 욕장 밖으로 나갔다. 직원이 판매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평상 아래 마룻바닥에서 중년 여자가 잠을 잤고, 평상에 앉은 노인 둘은 입을 벌린 채 드라마를 시청했다. 종은이 종종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쳐 로커룸으로 들어갔다. 종은은 똑같은 형태의 사물함 사이에서 자신의 사물함을 겨우 찾아내 외투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부재중전화는 없었다. 종은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남편과 통화하는 종은의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수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내용도 약간 부풀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럼 라면을 끓여먹어! 종은이 전화를 홱 끊고는 스마트폰을 사물함에 내던졌다. 몸이 아픈 애도 저렇게 재미있다고 잘 사는데! 화가 난 종은이 말하고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놀라 주위를 살폈다. 종은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뾰로통해진 종은이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욕장 안으로 들어갔다.” (pp.100~101) 작가의 문체는 확실히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꽤나 확고하다.
「한밤의 손님들」
나와 일영, 그리고 나의 엄마인 오리와 나의 동생인 돼지가 있다. 나와 오리와 돼지가 만나는 식당에서의 일화가 주욱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일영이 그 자리로 툭 떨어진다. 불합리한 관계가 비현실적인 장면 삽입으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에도 봐놓고 그래」
“여자가 들어갔을 때 노모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케이크 상자를 들고 서서 노모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노모의 얼굴은 허물처럼 흐늘거렸다. 눈 아래 불룩 튀어나온 지방이 늘어져 눈두덩엔 검은 그림자가 졌다. 다리를 대자로 벌리고 잠든 노모의 발목에서 불거진 혈관이 종아리를 휘감고 올라갔다. 굵고 가는 줄기가 아래로, 옆으로, 위로 펴지며 꼬이고 풀어졌다. 꽈리처럼 부푼 것도 있었고 거미줄처럼 펼쳐진 것도 있었다. 꼬불꼬불한 줄기는 노모의 몸을 타고 넘어 바닥으로 퍼져나갔다. 바닥에서 뻗어나온 줄기가 노모의 몸을 타고 자라는 것 같기도 했다. 여자는 잠든 노모를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작은방 가까이 다가갔다. 노모가 여자의 발밑에서 뒤척였다. 여자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망설이며 서 있던 여자가 손잡이를 돌렸다. 틈새가 벌어졌다. 방안을 들여다보던 여자의 손에서 케이크 상자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감겨 있던 노모의 눈꺼풀이 스르르 열렸다.” (pp.161~162)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소설에는 노모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부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노부의 역할은 노모의 역할에 비해 현실적이다.
「해피 해피 나무 작업실」
일호가 사장으로 있는 가구점에서 우재는 보조와 함께 가구를 만들고 일호는 손님을 맞이한다. 그 손님에는 우재의 장모도 있고, 우재는 장모가 방문한 그때 나무에 톱질을 하다가 피를 보게 된다.
「케이브 인」
노모와 노부, 장모나 이모부를 비롯한 피붙이들이 작가의 소설에는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함께 이동을 하거나 함께 밥을 먹거나 한다. 도통 알 수 없는 대화가 거듭되지만 이들은 모두 뭐가 문제냐 하는 표정으로 독자를 바라바고 있는 것만 같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자는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남자와 함께 섹스를 하고, 바로 이때 남편의 콘돔을 사용하게 된다. 둘은 다음 날 콘돔을 사서 채워놓으려고 하지만 같은 상표의 콘돔을 구할 수가 없다. 너무 오래전에 나온 상표였고 이제는 구하기 힘들어져버렸다. 간밤의 폭설로 눈 쌓인 아파트를 그리고 여전히 내리는 함박눈으로 비상체제인 거리를 남녀는 그렇게 싸돌아다닌다.
최정나 / 말 좀 끊지 말아줄래? / 문학동네 / 273쪽 / 2019 (2019)